
2008베이징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민호가 희대의 판정 번복으로 마음고생을 했을 후배 전준호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충고를 건넸다. 스포츠동아DB
후배 조준호에게 런던행 내줬던 금메달리스트 최민호의 편지
2012년 5월 15일은 최민호(32·한국마사회)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한유도회 강화위원회는 바로 이날 런던올림픽에 나갈 국가대표를 확정했는데, 난상토론 끝에 2008베이징올림픽 전 경기 한판승의 금메달리스트인 최민호 대신 무명의 신예 조준호(24·한국마사회)를 택했다. 두 남자의 인생궤적은 이때부터 엇갈렸다. 최민호는 파란만장했던 현역인생의 끝내기 수순을 밟고 있다. 조준호는 피와 땀의 훈련을 마치고, 30일(한국시간) 런던에서 감동의 동메달을 따냈다. 30일 연락이 닿은 최민호의 심경을, 후배를 향한 마음을 들어봤다.(글은 최민호의 발언을 뼈대로 삼되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평생 유도만 해왔는데 이런 올림픽 기간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가시간이 어색하기만 하네. 그래도 어젯밤 네 경기를 보게 되더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같은 마음이었겠지. 판정번복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나도 유도를 그렇게 오래 했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 경기에서 팔꿈치 인대까지 끊어졌는데 참고 했다지? 유도란 그런 것 아닐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투혼이라 부르겠지만 유도선수라면 알 거야. 어떤 고통이 몸을 괴롭혀도 참고 임하는 것이 유도라는 것을.
네가 동메달을 딴 뒤 “민호 형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 조언은 한계가 있는 거야. 네가 잘한 거야. 솔직히 내가 그 무대에 얼마나 서고 싶었는지 너는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 대신 네가 나간 거니까 정말로 잘 하길 빌게 되더라. 준호, 네가 항상 고생만 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처음에 넌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잖니. 그래서 무시당한 적도 있어서 안타까웠다. 그럴 때 “한순간에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지금 설움 잘 기억해서 나중에 너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우러러 보게 보여줘라”고 했던 말 기억하니? 나한테 많이 물어보고, 장난도 치던 후배가 언젠가부터 내 라이벌이 되더니 나 대신 올림픽에 나갔네.
순한 네 성격 알기에 내심 걱정도 했고, ‘내가 나갔으면 어땠을까?’란 생각도 안할 순 없더라. 그런 판정이 나오기 전, ‘네가 확실히 이겨버렸으면 어땠을까’란 아쉬움도 남는다. 너의 유도 스타일을 쉽게 바꿀 순 없겠지만 다음 올림픽에 또 나간다면 누구도 훼방할 수 없는 실력이 금메달을 보장해준다는 것을 너도 알게 됐겠지. 이제 나는 유도선수로서 운도, 최선도 다한 것 같다. 너와의 경기가 내 현역 마지막 경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은퇴해도 내 유도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고생했다, 내 후배 준호야.
정리|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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