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인의 전사 Road to Brazil] 첫 월드컵…단 1분이라도 온몸 불사른다

입력 2014-05-16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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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휘는 2010월드컵을 앞두고 불의의 부상을 당해 남아공행 비행기에 몸을 싣지 못했다. 그러나 2014브라질월드컵에선 4년 전의 아쉬움을 털겠다는 각오다. ‘골 넣는 수비수’는 브라질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까. 스포츠동아DB

4. 수비수 곽태휘

남아공월드컵 좌절 “부상보다 허무함에 더 아파”
최강희호 주장 활약 불구 홍명보호선 벤치 추락
묵묵한 기다림…“너의 자리가 있다” 최종 승선
주전이든 백업이든…나의 모든것을 던지겠다


남아공월드컵을 앞둔 2010년 5월 30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쿠프슈타인 아레나에서 열린 벨라루스와의 평가전. 대표팀은 0-1 패배보다 더 아픈 출혈을 감내해야 했다. 당시 29세였던 베테랑 중앙 수비수 곽태휘(33·알힐랄)가 전반 29분 상대 공격수와 공중 볼을 다투는 과정에서 왼쪽 무릎을 크게 다쳤다. 필드에 쓰러져 한참을 뒹굴다 들것에 실려 나가던 그의 얼굴에는 고통보다 허탈함이 가득했다.

그날 밤 현지 병원에서 MRI 검진을 받은 결과, 무릎 내측 인대 부분 파열로 전치 4주였다. “‘끝이다’느낌이 왔죠. 땅에 떨어지고 그토록 오래 (필드에) 누워있었던 건 아파서가 아니라, 그렇게 끝내기 아쉬워서….” 2008년 1월 30일 ‘허정무호’의 데뷔전인 칠레와의 평가전을 통해 늦깎이로 A매치에 데뷔한 곽태휘의 첫 월드컵 꿈은 그렇게 좌절됐다.

그러나 한국축구는 곽태휘를 잊지 않았다. 그해 8월부터 A매치가 열릴 때마다 그가 빠지는 법은 거의 없었다.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책임졌던 ‘최강희호’에선 주장 완장을 차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2012년 6월 8일 도하 알사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최종예선 원정 1차전이 하이라이트였다. 0-1로 뒤진 한국은 이근호의 동점골에 이어 후반 10분 곽태휘의 결승 헤딩골에 힘입어 4-1 역전승을 일궜다. ‘골 넣는 수비수’ 곽태휘의 진가가 또 한번 입증됐다.

물론 항상 순탄치는 않았다. 고비가 많았다. 지난해 7월 ‘홍명보호’가 공식 출범한 뒤 처지가 180도 바뀌었다. 주장 자리를 반납한 것은 물론, 킥오프 휘슬이 울릴 때까지 그의 자리는 대개 벤치였다. 애써 서운함을 감추려 했지만 안색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2002한일월드컵을 준비하며 홍 감독도 비슷한 아픔을 겪은 적이 있어 곽태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12일 열린 브라질과의 평가전(0-2 패) 직후 홍 감독은 조용히 곽태휘를 불러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당장은 아프겠지만, 넌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 최고의 수비수다. 내가 생각한 방향이 있었다. 이해해줬으면 한다. 월드컵에 대한 간절한 열망도 잘 알고 있다. 경기장 안팎에서 많은 역할을 해줄 네가 꼭 필요하다. 받아줄 수 있다면 월드컵에서도 함께 하고 싶다.”

곽태휘는 홍 감독의 말을 금세 이해했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반년이 흘렀고 8일 발표된 최종엔트리 23인에 그가 포함됐다.

여전히 곽태휘의 처지는 장담할 수 없다. 주전보다 백업에 가깝다. 그러나 열정과 투혼을 발휘할 준비가 돼 있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를 한순간의 기회를 위해. 단 1분이라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온 몸을 불사르겠다는 의지로 오늘도, 내일도 축구화 끈을 질끈 동여맨다.


● 곽태휘(알힐랄)는?

▲생년월일=1981년 7월 8일
▲키·몸무게=185cm·80kg
▲출신교=왜관중∼대구공고∼중앙대
▲프로경력=FC서울(2005∼2007년), 전남 드래곤즈(2007∼2009년), 교토 상가(2010년), 울산 현대(2011∼2012년), 알샤밥(2013년), 알힐랄(2014년∼ )
▲A매치 데뷔=2008년 1월 30일 칠레전(평가전)
▲A매치 통산 성적=33경기·5골
▲월드컵 경험=없음
▲주요 경력=2011아시안컵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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