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05㎞’ 여중생 에이스 김라경에게 야구란?

입력 2015-08-2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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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2015 LG컵 국제여자야구대회’가 열렸다. 한국 대표팀 선발 김라경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이천|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만 15세 여중생이 대만과의 개막전 선발…시속 100㎞ 넘는 강속구 뿌려
한화 투수 김병근의 친동생, “오빠 덕분에 야구 시작…평생 하고파”


동그란 안경을 낀 만 15세의 여중생이 시속 100㎞가 넘는 공을 던진다. 계룡 리틀야구단 소속 선수이자 금암중학교 3학년 학생인 김라경 얘기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이 소녀가 심장 부근에 태극기를 새긴 유니폼을 입었다. 28일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2015 LG컵 국제여자야구대회’ 대만과의 개막전에서 ‘코리아’ 팀의 첫 번째 투수로 당당히 마운드에 올랐다.

김라경은 한화 투수 김병근(22)의 친동생이다. 어릴 때 오빠가 야구를 하러 갈 때면 아빠와 엄마가 늘 야구장을 찾았고, 어린 딸도 혼자 집을 지킬 수 없어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그러다 오빠처럼 야구를 사랑하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나도 야구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했고, 6학년 때 계룡 리틀야구단에 입단하면서 꿈을 이뤘다. 한국여자야구가 미래의 대들보 한 명을 얻은 순간이었다.

중학생이 된 뒤로는 공부에 대한 부담도 생겼지만, 평일 3~4시간 정도는 꼭 야구를 한다. 김라경은 “저녁에 학원이 끝나면 개인훈련도 빼놓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그 결과는 무서웠다. 구속이 어느덧 최고 105㎞까지 올라왔고, 3월에는 리틀야구 사상 최초로 홈런을 때려낸 여자선수가 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오로지 야구 생각밖에 없는 소녀에게도 ‘국가대표’는 상상도 못했던 영광이다. 김라경은 “어릴 때 이렇게 큰 경험을 해서 어른이 된 뒤에도 내 인생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고 당차게 말했다.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김라경은 “늘 남자애들하고 같이 야구하느라 통하는 게 많이 없었다. 솔직히 ‘여자가 야구해서 뭐하느냐’고 차별도 받아서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언니들하고 같이 하니까 공감도 되고 야구가 더 재미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날도 그랬다. 국가대표 첫 경기, 게다가 상대는 난적 대만.

어린 선발투수는 잔뜩 긴장했다. 팔에 힘부터 들어갔다.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점수도 내줬다. 그때 언니들이 다가와 ‘뒤에 우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김라경은 “어린 내 눈에도 언니들이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무척 애쓰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정말 감동적이었다”며 울컥 눈시울을 붉혔다.

28일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2015 LG컵 국제여자야구대회’가 열렸다. 개막전 한국이 대만과의 경기에서 타선의 폭발에 힘입어 8-3 6회 콜드게임승을 거뒀다. 경기 후 한국 대표팀 선발투수인 김라경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천|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쉬운 길은 아니지만, 김라경은 그래도 야구가 좋다. 솔직히 말하면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단다.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계속 야구를 하면서 한국에서 여자야구가 발전하고 더 많이 알려지는 데 공헌하고 싶다. 프로야구처럼 여자들도 야구를 직업으로 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게 내 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이에 걸맞은 포부가 당차게 빛났다.

소녀투수의 패기는 결국 통했다. 김라경을 앞세운 한국A 팀은 소프트볼선수 출신 왼손투수를 선발로 내세운 대만의 ‘뱅가드’ 팀을 8-3으로 꺾고 개막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김라경도 3이닝 3안타 1볼넷 4탈삼진 2실점(1자책)으로 제 몫을 해냈다. 대표팀 김주현 감독은 “라경이가 많이 떨렸을 텐데 정말 고생 많이 했다”며 천진난만한 소녀선수에게 애틋한 눈길을 보냈다.

이천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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