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라커룸은 선수들의 성역…구단 VIP도 프런트도 존중해야 한다

입력 2016-01-2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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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직전 라커룸서 훈계하는 구단 고위층
경기 질때마다 사무실로 감독 부르는 사장
프런트 잘못된 관행이 팀 경기력에 악영향

최근 어느 팀에서 벌어진 일이다. 연패에 빠진 그 팀은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방송 스태프가 경기 전 인터뷰를 위해 감독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한국배구연맹(KOVO) 담당자가 부랴부랴 찾아나섰다. 감독은 라커룸에 있다고 했다. KOVO 직원은 라커룸 문 앞에 서 있던 구단 직원에게 “안에 들어가서 감독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당황했다. 제대로 말을 못했다. 결국 KOVO 직원이 문을 열고 라커룸 내부를 봤다. 뜻밖의 광경이 보였다. 그 팀의 VIP가 선수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이례적이었다. 보통 선수들에 대한 격려는 경기 후에 하거나, 피치 못해 경기 전에 해야 할 상황이라면 짧게 하는 것이 관례다. 이날 VIP의 격려사는 너무 길었다. 20분이나 걸렸다. 선수들에게 힘을 북돋아주려고 했지만, 도리어 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결국 그 팀은 또 졌다. 더 큰 문제는 그 팀의 어느 누구도 VIP에게 “이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는 것이었다.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니까.


● 라커룸은 선수들의 성역, 성역에 들어가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경기를 앞둔 선수들은 신경이 곤두선다. 극도로 예민해진다. 어떤 감독은 이런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려 아예 라커룸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맴돈다. 라커룸은 선수들의 정신적 피난처다. 성역이나 마찬가지다. 외부인이 그곳에 출입하면 결코 팀에는 좋지 않다. 아쉽게도 V리그에선 그런 일이 너무 잦다.

단골 하위권인 어느 구단. 패하면 경기가 끝나자마자 프런트가 라커룸에 쳐들어가 선수들을 질책하기로 유명했다. V리그의 모든 팀이 알았다. 그 팀이 성적을 못내는 진짜 이유인데, 묘하게도 그 구단만 몰랐다.

경기에 지면 누구나 화가 난다. 특히 기대했던 플레이를 못하면 지켜보는 사람도 짜증날 것이다. 그렇다고 힘들게 경기를 마친 선수들을 향해 비난을 퍼부어봐야 소득은 없다. 부정적 효과만 낳을 뿐이다. 당사자의 화는 풀릴지 모르겠지만, 당하는 선수들의 마음속에는 반감만 커진다. “네가 한 번 해봐라”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맴돌 것이다.

선수단과 프런트는 상호존중의 룰 속에서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각자의 신성한 공간이 있고,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간혹 이 경계선이 흐트러지는 팀이 있다. 결과는 당연히 좋지 못했다. 그 같은 문제의 구단은 프런트가 감독을 제쳐두고 자주 선수와 직접 만났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선수들은 감독을 우습게 봤다. 공멸했다.

프런트의 라커룸 출입 이후 수순은 선수기용에 대한 참견 또는 개입이다. 윗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동안 경기를 많이 지켜보니 배구가 별것 같지도 않다. 회사에서 많은 업무를 통해 관리자로서 성공했는데 이런 스포츠쯤이야’ 하는 자만심이 생긴다. 결국 윗사람은 선수관리를 노무관리의 연장선상에서 보고 덤벼들기 시작한다. 이 단계가 되면 어떤 감독도 버티지 못한다. 감독이 자주 바뀌는 하위팀의 속사정을 살펴보면 대부분 이런 이유가 숨어있다.


● 바닥에 있는 팀들에는 공통된 이유가 있다!

또 다른 팀. 그 구단은 대책회의가 많기로 유명했다. 경기에 지기만 하면 사장이 감독을 사무실로 불렀다. 선수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감독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기도 했다. 경기 다음날 오전에는 어김없이 자신의 사무실로 감독과 프런트 직원을 호출했다. 밤늦게 경기를 마친 감독은 다음날 새벽같이 보고서를 만들어야 했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사장과 함께 대책회의를 했다. 대책이 나올 리 없었다. 열심히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상대팀의 전력을 분석해야 할 감독을 이런 식으로 불러내니 성적이 좋을 수 없었다.

꼴찌를 도맡는 팀들에는 공통된 이유가 있다. ▲첫째 선수 구성이 나쁘다. 이는 투자의 문제이거나, 선수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좋은 선수를 다른 팀에 넘겨준 프런트의 판단 탓이다. ▲둘째 감독이 선수들과 따로 논다. 선수들도 훈련이나 생활태도가 나쁘고, 선수끼리 편이 갈린다. 이런 능력 없는 감독을 뽑은 것은 구단의 판단착오다. 선수들끼리 편이 갈라지는 이유 역시 평소 프런트가 특정선수만 끼고 돌기 때문이다. ▲셋째 어설픈 스포츠 지식을 지닌 프런트가 칼자루를 쥐고 흔든다. 감독을 무시하고 자신이 아는 얄팍한 스포츠 지식으로 관여하는 프런트가 팀을 휘젓기 시작하면 그 팀은 구제불능 상태가 된다. 이런 나쁜 사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팀이 과거 프로야구 롯데였다. 구단주대행과 프런트가 선수기용에 자주 개입했던 롯데는 1992년 이후 아직 우승을 못하고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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