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장원준. 스포츠동아DB
한때 KBO리그엔 ‘투수 FA(프리에이전트) 영입=실패’라는 공식이 있었다. 거액을 받고 이적한 FA 투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새 팀에서 하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구위 저하 외에도 수술을 받는 등 거액을 쓴 구단을 민망하게 만든 선수들이 많았다.
야구계에선 원소속구단이 해당 FA를 잡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타 팀으로 이적한 투수들이 실패한 케이스가 유독 많은 건 원소속팀에 해당 선수의 몸 상태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정보 혹은 가능성을 아는 팀은 선뜻 거액을 내놓기 어렵다. 그렇게 시장에 나온 투수들이 실패를 맛보는 패턴이 반복됐다.
그러나 이젠 이 공식도 깨지고 있다. 두산을 우승으로 이끈 ‘판타스틱4’ 선발진의 한 축인 장원준(31)이 기점을 마련했다. 롯데 소속이었던 장원준은 2014년 말 FA 자격을 취득하고, 두산에 4년 최대 84억원(발표액)에 계약했다.
장원준은 2년 동안 FA 투수, 그것도 선발투수에 대한 시선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두산은 장원준이 온 뒤로 2년 연속 왕좌에 올랐다. 특히 21년 만에 통합우승을 차지한 올해는 정규시즌부터 완벽했던 ‘무결점’ 우승이었다. 더스틴 니퍼트와 마이클 보우덴, 그리고 장원준과 유희관으로 구성된 4명의 선발진은 총 70승을 합작했다.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도 선발진에게 한 이닝을 더 맡기는 새로운 전략을 쓰면서 힘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장기 레이스뿐만 아니라, 단기전마저 ‘선발투수’의 힘이 강조되는 시대다. 올해는 FA 시장에 특급 선발투수들이 즐비하다. 당장 선발 1명 키우기 힘든 현실을 감안하면, 결정적인 전력보강 기회다.
한 관계자는 “지금 FA 선수들은 장원준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만큼 각 팀에서 선발 FA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몸값은 이에 비례해 상승했다. 원소속구단에 잔류하든, 다른 팀을 찾든 쓸만한 선발투수들의 시장가치는 치솟았다. 역대 최초로 발표액이 100억원이 넘는 선수가 나올지도 관심을 모은다.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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