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즈민으로 시작한 귀화…평창올림픽도 ‘푸른눈 한국인’ 열풍

입력 2017-09-1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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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에 귀화 선수는 끊이질 않는 이슈였다. 러시아 출신의 프로축구 명골키퍼 신의손(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대만 출신의 배구스타 후인정, 프로농구 혼혈선수 전태풍에 이어 아이스하키 맷 달튼이 한국 국적을 취득해 코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선전을 기대하게 했다. 사진|스포츠동아DB·안양한라

대한민국 스포츠에 귀화 선수는 끊이질 않는 이슈였다. 러시아 출신의 프로축구 명골키퍼 신의손(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대만 출신의 배구스타 후인정, 프로농구 혼혈선수 전태풍에 이어 아이스하키 맷 달튼이 한국 국적을 취득해 코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선전을 기대하게 했다. 사진|스포츠동아DB·안양한라

■ 한국스포츠 ‘귀화의 역사’

프로축구 귀화 돌풍 이끈 신의손·데니스
배구 후인정·농구 전태풍 국가대표 활약
아이스하키·바이애슬론 등도 귀화 동참
2018평창동계올림픽 메달 위해 땀방울


프로농구 삼성의 외국인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28)가 본격적으로 귀화 절차에 돌입하면서 농구계가 술렁이고 있다. 그간 남녀농구를 통틀어 혼혈선수들의 귀화는 몇 차례 있었지만, 순수 외국인선수가 한국인이 되겠다고 공표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종목의 사례는 어떠할까. ‘단일민족’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도 한국 국적을 향한 구애는 오랫동안 계속됐다. 한국스포츠 전반에 걸친 귀화선수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 최초의 귀화선수는 자오즈민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국적취득에 성공한 선수는 중국대표 ‘탁구스타’자오즈민(54)이다.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던 1989년 안재형(52)과 결혼한 뒤 귀화해 시초가 됐다. 이후 탁구는 귀화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종목으로 발전했다. 전통적으로 중국세가 강한 탓에 자국 선수들에 치인 중국선수들의 귀화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됐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출전한 172명의 탁구선수 가운데 44명이 중국 출신이라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전지희(25)가 귀화해 태극마크를 달고 리우 땅을 밟았고, 당예서(36)와 석하정(32) 등도 국가대표로 활약한 바 있다.

귀화탁구선수 전지희(왼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귀화탁구선수 전지희(왼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프로스포츠로 영역을 좁히면 타지키스탄 출신의 신의손(57)이 있다. 원래 이름은 발레리 샤리체프. 1992년 K리그 성남 일화에 데뷔해 눈부신 선방 쇼를 펼쳤다. 그러나 너무나도 기량이 출중했던 점이 문제였다. 자극을 받은 다른 구단들이 앞 다퉈 외국인 수문장을 영입하자 K리그엔 외국인 골키퍼 영입금지 조항이 생겼다. 더 이상 한국에 머물 수 없게 된 그는 귀화를 결심해 2000 년 마침내 한국인이 됐다. 구리 신씨의 시조로서 이후에도 지도자로서 한국축구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신의손이 첫 테이프를 끊자 K리그엔 ‘귀화 열풍’이 불었다. 다음 주인공은 데니스(40). 러시아 태생으로 1996년 수원 삼성 유니폼을 입은 1999 년, 2000년 두 시즌 연속 K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됐다. 걸출한 공격수로 명성을 쌓은 뒤 2003년 성남 일화로 이적해 그해 7월 귀화에 성공했다. 당시 소속 구단명에서 착안해 주민등록상 이름을 이성남(성남 이씨 시조)으로 정했지만, 2006년 수원으로 컴백하자 데니스로 개명했다. 둘의 귀화는 지금까지 대다수 팬들에게 기억남을 만큼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실력은 물론 인성 그리고 한국을 향한 애정까지 모자람이 없었다. 이들의 모범적인 선례는 이싸빅(44)과 마니산(45) 등 후배 귀화선수들을 낳게 된다.

전 성남 이성남. 사진제공|성남

전 성남 이성남. 사진제공|성남





● 농구, 배구 그리고 평창전사들까지

배구에선 후인정(43)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귀화를 선택해 화제를 모았다. 같은 배구선수 출신 후국기(65) 전 선경 감독의 아들이자 대만화교 3세였던 후인정은 경기대 시절부터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 아들을 지켜본 후국기 감독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태극마크의 꿈을 위해 일찌감치 아들의 귀화를 결심했다. 덕분에 후인정은 대학생이던 1994년 귀화했고 이후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무대를 누볐다.

라틀리프의 귀화 결심으로 화제가 된 농구 역시 2000년대 후반 들어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문태종(42)∼문태영(37) 형제를 비롯해 전태풍(37) 등 한국인의 피가 섞인 이들이 KBL은 물론 국가대표에서 마음껏 기량을 펼쳤다.

최근 들어선 2018평창동계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한 귀화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2011년 국적법 개정으로 ‘체육분야 우수인재 특별귀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절차도 간편해졌다. 동계올림픽 인기스포츠 아이스하키는 맷 달튼(31), 브락 라던스키(34), 마이클 스위프트(30) 등 다수의 귀화(일부는 복수국적) 국가대표를 보유하고 있다. 덕분에 남자아이스하키는 최근 국제대회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두며 평창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다른 종목도 귀화에 열을 올린 상태다. 바이애슬론은 안나 프롤리나(33), 알렉산드르 스타로두베츠(24) 등이 귀화했고, 루지는 독일의 아일렌 프리쉐(25)가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물론 성공의 발자취만큼 좌절의 역사도 공존했다. 축구에선 에닝요(36)와 라돈치치(34) 등이 귀화문턱을 넘지 못했고, 농구에선 애런 헤인즈(36)가 실무단계에서 고개를 숙였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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