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송승준. 스포츠동아DB
송승준은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KBO리그 ‘100승 투수’는 생소한 불펜 보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14일 삼성전(2이닝 무실점)과 15일 SK전(4이닝 1실점) 연투를 했다. SK전에선 승리까지 얻었다. 송승준의 개인통산 105번째 승리였다. 이전까지 송승준의 불펜승리는 2015년에 딱 한번 있었다. 나머지 103승은 선발승이었다.
17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만난 송승준은 “(박)세웅이가 선발로 올라오니까 누군가 한명은 선발에서 빠져야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불펜으로 갈 것이란) 예감은 하고 있었다. 고참 되면 눈치가 빨라진다”라고 웃었다.
각오는 했어도 막상 불펜에서 던지려니 힘들었다. “언제 던질지 모르는” 환경이 가장 힘겨웠다. 시작은 좋았어도 못 던지면 더 부각되고, 욕먹기 딱 좋은 상황인 것도 잘 안다. 베테랑의 관록은 이럴 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다. 송승준은 “결과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마운드에서 타자 상대하는 것은 선발이나 중간이나 똑같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롯데에서만 12시즌, 자연스럽게 길게 보는 안목이 생겼다. 공 한개, 타자 한명에 집중해서 던지다보면 언제 또 상황이 바뀔지 모르는 것이 야구다. “선발에서 공백이 생길 때를 대비한 준비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선발 욕심이 나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롯데가 필요한 데서 던지는 것을 어느덧 자신의 소명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다.
롯데 송승준.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지금의 롯데 선발진의 상황도 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불펜에 가는 것이 맞다. 박세웅, 김원중, 윤성빈은 앞으로 10년 이상 우리 팀의 선발을 책임질 재목이다.”
이제 30대 후반에 접어든 송승준은 집착보다 고마움을 더 많이 느낀다. “언제까지 야구할지 모르겠다. 프리에이전트(FA)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롯데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 현역 인생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았기 때문에 롯데의 승리에만 도움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롯데의 예상 밖 고전에도 송승준은 “분위기는 사소한 데서부터 올라올 수 있다. 아직 80경기 가까이 남았다.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멤버다. 야구는 분위기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올 시즌 유독 시련을 겪고 있는 마무리 손승락(36)에 대해서도 “한 시즌도 안 쉬고, 지금까지 온 마무리 투수다.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선수이니까 불펜 리더로서 잘 이끌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긍정적 시선을 보냈다.
인천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