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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도쿄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마음이 흔들렸던 김호철 감독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있었다. 그의 선택을 앞두고 배구계의 어른으로서 대의명분을 선택해주길 바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오래 고민했다. 그만큼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올지 모른다”는 솔직한 말도 이해가 된다. V리그를 떠난 지 4년째인 그에게 대표팀감독 연봉의 몇 배가 넘는 좋은 조건의 프로팀 감독자리는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호철 감독은 남자부 첫 대표팀 전임감독이었다. 이 제도가 만들어진 당시를 되돌아보자. 대표팀 박기원 감독이 대한항공의 사령탑으로 가면서 문제가 되자 “대표팀감독의 처우를 개선해주자”고 한 것이 출발이었다. 이를 위해 한국배구연맹(KOVO)이 감독 면접에 참여하고 남녀대표팀 코칭스태프를 위해 해마다 6억원을 지급하기로 이사회에서 결의도 했다. 즉 대표팀 전임감독제는 KOVO의 구성원인 13개 구단이 모두 따르기로 한 중요한 약속이다. 이를 구성원인 OK저축은행이 깬 것이 이번 해프닝의 본질이다. 이 상황에서 누가 먼저 간다고 했거나, 오라고 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OK저축은행은 현역 대표팀감독을 만났고 영입을 논의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KOVO 회원사로서 OK저축은행은 이전에도 리그의 공통이익에 저해하는 행동을 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13개 회원사들이 정한 규정을 따르는 것이 맞지만 OK저축은행은 그 때도 다른 선택을 했다. 이처럼 리그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회원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좋지 못하다. 자칫 타 구단으로부터 왕따 당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이 경우 피해는 선수단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이미 알게 모르게 피해를 봤을 수도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한배구협회 몇몇 분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김호철 감독의 프로행을 내심 바라는 듯 했다. 심지어 다음 감독자리는 누구인지에 더 관심을 쓰는 사람들도 많았다. 전임감독과의 계약도 문제였다. 2022년까지 보장이라지만 계약은 1년 단위였다. 당초 전임감독제의 취지는 4년 주기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표팀을 잘 키우자는 것이었다. 중장기 계획도 없이 확실한 미래도 보장해주지 않는 전임감독제라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