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도드람
최근 한국배구연맹(KOVO)은 경사스러운 날을 맞았다. KOVO 출범 15년 만에 처음으로 사무국에서 정년퇴직자가 나왔다. 만 60세로 사무국 직원들의 축하 헹가래를 받고 떠난 최초의 사례다. 이전까지 몇몇 사람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KOVO를 떠났고 그 과정에서 송사를 벌인 적도 있었다. 이번처럼 모두의 박수를 받고 나간 적은 없었다.
그는 우리나라 프로스포츠의 산증인이다. 40년 가까이 스포츠와 함께했다. 최순영 전 대한축구협회장 시절 입사해 마케팅 담당을 한 것이 출발이었다. LG안양치타스~FC서울을 거쳐 도민구단 경남FC의 사무국장도 했다. 프로축구단 LG가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그는 팀 이름에 서울을 붙이자고 우겼다. 풋볼클럽(FC) 뒤에 기업이름 대신 연고지 서울을 쓰자고 주장했던 탁월한 식견덕분에 FC서울이 탄생했고 1000만 서울시민의 자랑이 됐다.
창단한 도민구단 경남FC가 선수단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해 힘들어 할 때는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순식간에 30여 명의 선수들과 계약했다. 이 과정에서 경상남도에서 지원받았던 선수단 구성예산 가운데 20억 원을 반납했다. 에이전트들과 비밀스런 흥정으로 이미 타놓은 예산을 빼돌릴 수도 있었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 이를 잘 아는 박항서 경남FC 초대 감독은 지금도 고마워한다.
축구판에서 잔뼈가 굵었던 그가 프로배구로 방향을 틀었다. KOVO의 사무국장으로 왔을 때만 해도 조직은 시끄러웠다. 총재가 물러나고 사무총장도 이런저런 문제에 연루돼 복잡했다. 이후 새로 들어온 구자준 총재를 모시고 사무국의 살림을 책임졌다. 그동안 KOVO는 NH농협과 10년간의 오랜 타이틀스폰서 계약을 맺었고, 최근에는 도드람이 V리그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방송사와의 중계권 협상에서도 그의 친화력은 빛났다. V리그라는 콘텐츠를 방송에 최적화시키는 전략으로 방송사와 KOVO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었다. 5년 200억 원의 장기중계권 계약을 맺어 관리구단 체제에서 벌어놓았던 돈을 다 까먹었던 KOVO의 빈 곳간도 채워놓았다.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유소년배구사업 등 손을 댔던 배구계 현안은 많았다. 떠나면서도 V리그가 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남겨놓았다. 연맹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조직이다. 새로운 시스템이 실행되면 손해를 보는 측에서는 독선적이라고 비난도 했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위를 대신해서 악역도 떠맡았다. 조원태 총재 집행부에서도 묵묵히 사무국을 이끌며 자신의 일을 했다.
정년퇴임 며칠 전까지도 KOVO의 큰 고객인 타이틀스폰서를 꼼꼼히 챙겼다. 떠나면서 KOVO에 큰 선물도 안겼다. 7월 중순이면 선물의 실체가 드러난다. 혼자서 많은 일을 했기에 V리그는 그의 공백을 걱정한다. 마지막 회식 자리에서 그는 “윗사람을 기준으로 삼아서 눈치 보지 말고 배구를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라”고 했다. “이제 당분간 푹 쉬겠다”고 한 스포츠전문가의 이름은 배구인 누구나 다 아는 윤 국장, 윤경식이다. 그의 앞날에 꽃길만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