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MVP 시즌, 인생 포지션도 찾았다.”
K리그1(1부) 전북 현대의 특급 미드필더 손준호(28)가 밝게 웃으며 한 말이다. 정말 그랬다. 포지션이 바뀌었음에도 혼란 없이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그 결과 팀도, 자신도 모든 것을 얻게 됐다. 전북은 정규리그에 이어 FA컵까지 석권해 구단 사상 첫 ‘더블(2관왕)’의 감격을 누렸고, 손준호도 꽃길을 걸었다.
찬란했다. 공격 포인트는 2골·5도움으로 두드러지지 않지만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투지와 헌신은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다. 각 팀이 감독 및 주장, 미디어의 투표로 선정되는 K리그1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쥐었고, 베스트11(미드필드 부문)의 한 자리도 꿰찼다.
15일 ‘CMS와 함께하는 2020 동아스포츠대상’에서도 손준호는 K리그 최고의 선수로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전북을 제외한 K리그1 11개 구단 동료들의 직접투표를 통해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총 171점을 얻어 2위 강상우(72점·포항 스틸러스)를 큰 격차로 압도했다.
손준호는 원래 공격 성향이 짙은 미드필더였다. 그러나 팀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조세 모라이스 감독이 스페인 동계전지훈련 때부터 공수연계 플레이에 수비진을 보호하는 역할을 그에게 맡겼다. 생애 첫 동아스포츠대상 수상에 앞서 그는 “코칭스태프로부터 ‘수비 임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아주 낯선 역할도 아니라 불안함은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오히려 잘 풀렸다. 혼란스럽지도 않았고, 시행착오도 겪지 않았다. 지금은 공격형과 수비형 중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후자에 손을 든다. 손준호는 “내 인생 포지션을 찾았다. 적성에 잘 맞는다. 많은 득점에 관여하는 역할도 좋은데, 계속 길목을 뚫어주고 경기 밸런스를 잡아주며 구석구석을 많이 뛰는 지금의 자리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상들을 받지 않았느냐”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고민은 있다. 다음 행보다. 손준호는 전북에서 거의 모든 것을 이뤘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전북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2018년부터 매 시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3년 동안 리그 3회, FA컵 1회 우승은 결코 쉽지 않은 경력이다. 해외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나이로 볼 때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러브 콜도 적지 않다. 중국 슈퍼리그를 중심으로 직·간접적으로 관심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특히 산둥 루넝이 가장 적극적이다. 장쑤 쑤닝, 선전FC, 허난 전예, 광저우 에버그란데 등의 물밑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유럽이 오랜 꿈이었지만, 국가대표 경력(A매치 8회)부터 짧은 내가 욕심낼 무대는 아니다”고 털어놓은 손준호가 분명히 약속한 게 한 가지 있다. ‘무리한 이적 추진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전북과 계약을 연장해 계약기간이 3년 더 남아있는 그는 “‘K리그 MVP는 헐값에 데려올 수 있다’는 인식을 남길 필요 없다. MVP답게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전북이 만족할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떠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