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은 2015년 신생팀 우선지명으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2018년까지는 선발과 불펜에서 모두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했고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임팩트’만큼은 강렬했다. 5월 27일 수원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전에서 9이닝 4안타 무4사구 완봉승을 기록한 것. KT 역사상 첫 완봉승이었다. 이날 전까지 프로 23경기에서 승리 없이 3패만을 떠안았으니 반전이었다. 데뷔 첫승이 무4사구 완봉승인 건 KBO리그 역사상 주권이 유일하다.
2019년 이강철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며 불펜으로 완벽히 정착했다. 주권은 지난해 71경기에서 6승2패2세이브25홀드, 평균자책점(ERA) 2.99를 기록하며 완전히 날아올랐다. KT 소속 단일시즌 최다홀드 신기록. 이에 그치지 않고 2020년에는 77경기에 나서 6승2패31홀드, ERA 2.70으로 안정감이 더욱 올랐다. 2년 연속 20홀드 이상 기록한 건 리그 역대 4호였다. 이 감독은 고마운 선수를 물을 때마다 주권을 가장 먼저 꼽았다. 기여도는 기록 이상이다.
연말 시상식에서도 주권의 이름이 빛났다. 이영준(25홀드·키움)을 제치고 홀드 부문 타이틀을 챙겼다. KT 역사상 토종투수 최초 타이틀 홀더에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KT 역사상 타이틀 홀더는 2017년 라이언 피어밴드(ERA), 2020년 멜 로하스 주니어(홈런·타점·득점·장타율) 등 온통 외국인 선수였다. 올해 주권과 심우준(도루·35개)이 토종 역사를 썼다.
31일 만난 주권은 “최고의 한 해였다. 개인 성적이나 타이틀도 기분 좋았지만 팀이 첫 포스트시즌을 진출하는 데 보탬이 된 것 같아 기쁘다”는 소회를 밝혔다. 사실 주권은 올 시즌을 앞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내심 30홀드 이상 기록하며 타이틀을 챙기고 싶다”고 밝혔는데, 자신의 다짐을 지켜냈다. 주권은 “지난해 불펜으로 풀타임을 처음 소화했다. 개인적으로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시즌 초반 무너진 불펜을 홀로 지탱하며 혹사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정작 주권은 “만약 어디가 아프다면 아무리 참아도 티가 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아프지 않았다. 144경기 장기 레이스에서 오는 피곤함 정도는 있지만 특별히 팔꿈치나 어깨 쪽에 무리는 없었다”며 “기회가 닿을 때 많이 나가는 건 내게도 좋은 것이다.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KT가 2021년에도 가을야구를 하기 위해선 주권의 활약이 필수적이다. 만약 2021년에도 20홀드 이상을 기록한다면 3년 연속으로 기록을 늘리게 된다. 역대 KBO리그에서 이를 달성한 이는 안지만(은퇴·2012~2015년, 4년 연속)뿐이다. 주권은 “욕심이 난다. 몸 상태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면서도 “기록을 의식하는 순간 결과가 나빠졌다. 기록을 따라가면 안 된다. 신경 안 쓰고 하던 대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주권의 ‘하던 대로’는 리그 최고의 셋업맨 역할이다. 주권은 여전히 자신감이 가득하다.
수원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