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홍건희. 스포츠동아DB
두산 베어스 우완투수 홍건희(29)는 류지혁(KIA 타이거즈)과 맞트레이드가 확정된 다음날(지난해 5월 8일) 스포츠동아와 인터뷰에서 힘찬 목소리로 다짐했다. 홍건희가 언급했던 ‘그 기록’은 바로 잠실구장에서 성적이었다.
두산의 홈구장은 10개 구단의 홈구장 중 외야펜스까지 거리가 가장 길다. 투수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요소다. 트레이드 당시 김태룡 두산 단장은 “(홍건희의) 잠실구장의 데이터까지 봤다”고 귀띔했다. 트레이드 전까지 홍건희의 통산 평균자책점(ERA)은 6.30이었다. 그러나 잠실에선 3.76으로 월등히 좋았다.
투구하는 환경, 한 시즌의 절반을 뛰어야 하는 홈구장의 변화는 선수가 반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홍건희도 이를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잠실구장에서 내가 거둔 성적을 아주 자세히 알진 못했지만, 분명히 좋은 기억은 있었다. 잠실에서 던지는 것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산의 눈은 정확했고, 홍건희의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올 시즌 25경기에서 2승2패1세이브5홀드, ERA 1.61의 성적을 거두며 두산 불펜의 중심축으로 거듭났다. 특히 잠실구장 15경기에선 1승1패4홀드, ERA 1.08, 19삼진, 8볼넷의 위력을 자랑했다. 지난해에도 잠실 30경기에선 3승3패1세이브6홀드, ERA 3.03으로 시즌 ERA(4.98)를 뛰어넘었는데 올해 ‘잠실의 강자’다운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2019년의 시속 143.3㎞, 지난해의 145.8㎞를 넘어선 148㎞의 직구 평균구속은 기술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음을 보여준다. 75.8%의 직구 구사비율은 그만큼 자신감이 붙었다는 의미다.
이는 뜬공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구와도 연결된다. 타구가 뜨더라도 넘어가기 쉽지 않다는 계산이 깔려있기에 그만큼 자신 있게 자기 공을 던질 수 있다. 올 시즌 홍건희의 땅볼(22개)/뜬공(20개)의 비율은 1.10이다. 두산 시절로 범위를 넓히면 0.88(땅볼 71개/뜬공 81개)로 다소 감소하지만, KIA 시절의 통산 기록이 0.66(땅볼 269개/뜬공 407개)에 불과했음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변화다. 다소 불안한 제구와 기복 등의 단점보다는 확실한 강점을 눈여겨본 두산의 선택이 통한 것이다.
홍건희의 끊임없는 노력과 변화를 위한 의지도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요소다. 트레이드 당시 KIA 조계현 단장도 “홍건희는 정말 성실한 선수인데, 그동안 잠재력이 터지지 않았을 뿐이다. 두산에서 진심으로 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례적 칭찬이 아닌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무엇보다 개막전부터 단 한 차례도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지 않고 제 몫을 해내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가장 자신 있는 자리에서 결과를 내는 성공체험만큼 선수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요소는 많지 않다. 황폐화하다시피 했던 지난해 두산 불펜은 홍건희에게 기회의 장이었고, 이제는 ‘강한 불펜’의 한 축이 됐다. 두산이 핵심선수들의 연쇄이탈에도 살아남는 비결, 홍건희의 성공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