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강주희 VNL 결승전 주심이 말하는 심판의 세계

입력 2021-07-04 10: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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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F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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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자대표팀의 부진으로 배구 팬의 관심에서 밀려난 2021 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 여자부는 미국과 브라질이 결승에서 마주쳤다. 이 경기를 지켜본 이들은 낯익은 얼굴을 봤을 것이다. 강주희 심판이었다. 미국-터키 4강전 부심에 이어 결승전의 주심을 봤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관하는 대회의 마지막 경기에서 가장 높은 심판대 위에 한국인 심판이 올랐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국제 배구계에서 외교력이 떨어지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더 그렇다. 강주희 주심은 단호하고도 명확한 판정으로 결승전을 매끄럽게 진행했다. 대회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그는 지금 2주간의 자가 격리를 하고 있다. 힘든 환경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악전고투를 거듭했던 VNL에서의 생활과 심판세계의 이면을 물어봤다.


-축하한다. VNL 결승전 주심은 전 세계 수많은 심판들이 가장 원하는 자리 아닌가.
“이탈리아에서 대회가 열리고 영향력 큰 유럽 각국의 심판도 많아서 결승전 주심에 배정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준결승전을 마치고 동료 심판들과 셔틀버스를 기다리다가 심판위원장을 우연히 만났다. 그 자리에서 평소 무뚝뚝하던 위원장이 ‘내일 2번째 경기 주심’이라고 얘기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해서 그 순간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주면의 동료들이 ‘축하 한다’고 해줬다. 그때서야 결승전 주심 배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진=F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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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회에서의 심판배정 방식이 궁금하다.
“결정은 위원장이 하는데 평소에는 하루 전날 심판들의 단체 대화방에 공지해준다. 예전에는 종이로 써서 심판들이 묵는 곳의 방문 틈으로 넣어주기도 했다. 경기배정 통고는 오전 6시에 올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밤 11시에도 알려준다. 심판들은 그 결정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이번 대회는 독특한 방식으로 치러졌는데.

“이전 VNL 때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심판을 봤다. 1년 내내 심판위원장과 한 번도 마주치치 않은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한 곳에서 경기를 하다 보니 모든 경기를 위원장이 지켜봐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심판들이 긴장했다. 한국 V리그에서도 자주 보지 않았던 남자경기도 배정을 받아서 더 힘들었다. 남자경기는 여자경기보다 더 빠르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으면 부담이 된다. 실수하면 모든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이라 더 긴장했고 체력소모도 많았다.”


-한 달 이상 매일 심판을 보면 그 스트레스가 대단할 것 같다.



“어느 대회보다 힘들었다. 선수들은 3경기를 하면 쉴 수 있었지만 심판은 쉬는 날이 없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18명의 심판이 248경기를 커버했다. 이 때문에 부심을 맡으면 다음 경기는 대기심으로 참가했다. 그래서 부심이 되면 하루에 12시간 이상 체육관에서 지내야했다. 위장병 탓에 점심 도시락을 먹지 못해 굶고 지낸 적도 많았다. 모든 심판이 다 힘들었을 테지만 서로 자존심이 있어서 내색도 하지 않았다. 하여튼 33일이 길었다.”

사진=F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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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듣다보니 심판도 선수처럼 체력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 대회 도중에 스트레스와 체력 탓에 주심이 경기 도중 쓰러지기도 했다. 2주차 때였다. 이집트 심판도, 페루에서 온 심판도 부심을 보다가 쓰러졌다. 피로누적과 스트레스였다. 코로나19 탓에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숙소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날 이후 모든 심판들에 비상이 걸렸다. 전 세계 배구 팬이 지켜보고 있고 심판위원장마저 경기장에 있어 엄청난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다. 모두 다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현지의 숙소생활은 어땠나.

“한마디로 극기 훈련 같았다. 숙소 밖 바닷가에 모래사장이 있는데 12곳으로 구역을 지정해 각국의 선수들과 심판들에게 하루에 1시간씩 사용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지정해줬다. 심판에게는 숙소에서만 지내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매일 좁은 방에서 혼자서 지내거나 경기장에서 대기했다. 산책을 가고 싶어도 조금만 밖으로 움직이면 즉시 활동금지를 알리는 메일이나 문자가 날아왔다. (나는)남자선수들이 묵는 곳에 있었는데 여자선수들이 지냈던 리미니보다 더 시골이었다. 어느 날은 숙소에서 밖을 바라보는데 꼭 수용소에 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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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정 속에서 기억나는 것은 있나.

“대회 초반에 독일 남자대표팀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버스 기사였는데 다행히 선수들은 검사결과 음성이 나왔다. 그 발표 다음날 독일-프랑스 경기 때 하필 내가 주심 배정을 받았다. 걱정이 되기는 했다. FIVB와 이탈리아 측에서 이번 대회를 위해 철저히 준비를 한 덕분에 큰 사고가 나지 않고 마쳤다. FIVB는 이번 경험을 참고로 도쿄올림픽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 대표팀과 숙소나 경기장에서 자주 마주쳤는데 한국전력에서 뛸 사닷이 가끔 아는 척을 했다. 나는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다가 대기심을 볼 때 짧게 얘기를 나눴다. 가까이서 보니 아주 매력적으로 생겼더라. 말도 행동도 V리그 팬들에게 사랑받을 것 같았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다시 도쿄올림픽에서 심판을 봐야할 텐데 힘들겠다.

“13일 자가 격리를 마치면 우선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받아야 한다. 19일 일본으로 떠난다. 당초 도쿄올림픽은 19명의 심판과 3명의 판독심판이 진행하기로 했는데 일본의 대회조직위원회에서 심판 숫자를 줄여달라고 요청해 16명으로 줄였다. 그런데 이번 VNL 도중 심판이 쓰러지자 FIVB에서 방침을 바꿔 1명을 추가했다. 결국 17명의 심판과 3명의 판독심판이 올림픽을 진행한다. 그나마 나는 아무 탈 없이 귀국 비행기를 탔고 집에서 격리를 하지만 태국 일본 중국의 심판은 다른 격리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귀국하는 항공기편이 없어지는 바람에 집에도 가지 못하고 공항에서 하염없이 대기하는 심판도 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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