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휠체어 육상의 전설 유병훈이 2024파리패럴림픽에 출전해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내가 출전하지 않으면 한국 휠체어 육상의 명맥이 끊길 것 같았다.”
휠체어 육상 선수 유병훈(52·경북장애인체육회)은 한국 장애인 육상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1990년대 휠체어 농구 선수로 활동하던 그는 육상으로 종목을 바꾼 뒤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2002부산대회부터 2022항저우대회까지 6회 연속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것은 물론 2008베이징대회부터 2020도쿄대회까지 4회 연속 패럴림픽 무대도 밟았다.
숱한 국제대회에서 출중한 경력을 쌓은 유병훈은 항저우아시안패러게임을 끝으로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바뀌는 자신의 신체 능력을 인정하고,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자리를 물려줘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제는 즐기면서 운동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병훈이 트랙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을 넘어서는 선수는 나오지 않았고, 2024파리패럴림픽 출전권 획득에 접근하는 선수도 찾기 어려웠다. 이에 그는 만 52세의 나이로 파리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내며 다시 한번 도전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내가 출전하지 않으면 한국 휠체어 육상의 명맥이 끊길 것 같았다”며 “고민하다가 다시 (패럴림픽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1972년생인 유병훈의 패럴림픽 출전만으로도 한국 휠체어 육상에 전해진 메시지는 크다. 1일(한국시간) 스타드 드 프랭스에서 열린 대회 육상 남자 400m(스포츠 등급 T53) 예선에 출전한 그는 5회 연속 패럴림픽 출전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 종목은 2개 조 상위 3명과 전체 기록 상위 7, 8위에게 결선 진출권을 준다. 51초38을 기록한 그는 2조 4위로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깊은 울림을 준 것만큼은 분명했다.
유병훈은 “생각보다 기록이 잘 나오지 않아 아쉽지만, 남은 경기가 있으니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육상이 분명 힘든 종목이긴 하다. 후배들에게도 무언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많은 후배가 자극을 받고 좀 더 분발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병훈은 4일 남자 100m, 5일 남자 800m에 출전하고 8일에는 마라톤에도 도전한다. 단거리부터 장거리까지 가리지 않는다. 그는 “내가 나이가 많다 보니 체력을 회복하는 속도도 예전과 같지 않다. 마음만은 20년 전과 같지만,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파리|김현세 기자 kkach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