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박기원 감독. 스포츠동아DB
● 지난 시즌의 키워드-강한 서브와 압박수비 그리고 자율
박기원 감독은 주전선수들의 나이와 체력을 감안해 느린 출발을 선택했다. 선수들에게 각자의 몸 상태에 맞춰 훈련을 시키고 숙소생활은 최대한 자율을 보장했다. 훈련방식도 강요하지 않았다. 선수들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아서 하도록 했다. 이미 몇 년째 같은 멤버로 시즌을 거듭했던 선수들은 실전 같은 즐거운 훈련으로 조직력을 더 높였다. 선수들이 배구를 즐기도록 한 효과는 봄 배구에서 잘 나타났다. 특히 강력한 서브공격과 탄탄한 리시브에 이은 창의적인 공격옵션 사용은 현대배구가 추구하는 롤 모델이었다.
대한항공은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수비도 새로운 시도를 했다. 코스를 예측해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서 더 과감한 압박수비와 시프트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공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는 길목을 지켜서 우리 코트 안에서 공이 놀도록 했다. 대한항공의 한계를 넘나드는 강한 서브와 압박수비는 이번 시즌 많은 팀들도 벤치마킹하기 시작한 성공사례였다.
● 이번 시즌의 키워드-여유와 자신감 그리고 책임감
박기원 감독에게 이번 시즌 무엇이 가장 달라졌냐고 묻자 “여유와 자신감”을 꼽았다. “첫 우승을 하고나자 선수들이 훨씬 여유를 가지고 자신 있게 경기를 한다. 경기 도중이나 시즌 때도 몇 번씩 위기가 오는데 예전과는 달리 그때마다 스스로 버티는 힘이 생겼다. 플레이나 생각에서 여유가 보였다”고 했다. 결국 이런 여유에 상대가 먼저 제풀에 쓰러졌다. 시즌 내내 주전선수들의 체력방전으로 고전했지만 지지 않고 승점을 따내면서 순항을 거듭했던 이유였다. 쓸데없는 힘을 빼자 더욱 강력한 힘이 생긴 대한항공이었다.
이번 시즌 V리그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상상도 못하는 대역전 경기의 속출이었다. 대한항공은 그 중심에 자주 섰다. 모든 팀이 강한 서브에 팀의 성패를 걸다보니 서브의 성공여부에 경기가 극과 극으로 내달렸다. 대한항공은 강력하면서도 범실이 적은 서브로 상대를 잘 공략했다. 여기에 더 탄탄해진 압박수비와 안정적인 리시브 라인은 대한항공을 어떻게든 버티게 해줬다.
자율배구 2년째 선수들의 생각도 진화했다. 이제 선수들은 감독의 배려로 생긴 배구 이외의 시간에 책임을 생각했다. 박진성 사무국장은 “내가 못하면 동료가 힘들어지는 것을 아는 선수들이 스스로 자기가 해야 하는 역할을 잘 알고 해줬다. 각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코트에서 움직였다”고 했다.
대한항공 정지석(왼쪽)-한선수. 스포츠동아DB
● MVP 후보 정지석과 한선수, 그리고 증명된 기록들
시즌을 마치고 첫 자유계약(FA)선수가 되는 정지석이 엄청난 성장을 했다. 커리어하이 기록을 세우며 팀에 큰 도움을 줬다. 강력한 MVP 후보다. 시즌 중반까지 주공격수 가스파리니가 제 역할을 해주지 않았지만 팀이 순위경쟁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정지석의 힘이었다. 올스타브레이크 이후 체력을 회복한 가스파리니도 살아났다. 정지석이 팔꿈치 부상으로 잠시 힘들었지만 봄 배구를 앞두고 팀이 다시 완전체를 향해 가는 것이 좋은 조짐이다.
대한항공의 힘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이번 시즌 리시브와 수비 득점 부문에서 1위다. 공격종합 블로킹 디그 세트부문도 2위고 서브만이 3위다. 한마디로 공격과 수비 연결 모두가 탄탄한 완성형 팀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