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배구단
매스미디어의 관심도 높았다. 이맘때 치러지던 KOVO컵과 비교됐다. 최태웅 석진욱 장병철 등 3명 초중고교 동창생이 모두 프로팀 감독이 되어 처음으로 맞대결을 하다 보니 연습경기인데도 취재열기가 높았다. 프로팀의 일상과 같은 연습경기도 잘만 이용하면 많은 이들이 만족하고 배구시장을 개척하면서 꿈나무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성공사례다.
● 성공했던 부산 썸머매치가 남긴 진정한 성과
이번 행사를 준비했던 4개 팀 사무국장들이 “이처럼 일이 커질 줄은 우리도 몰랐다”고 털어놓았을 만큼 썸머매치가 남긴 유산은 기대 이상이었다.
먼저 V리그 관계자들과 4개 팀 감독, 선수들에게 우리가 하는 일과 배구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줬다. 그냥 넘길 수 있는 사소한 것들도 시야를 밖으로 돌려 팬의 입장에서 본다면 고마운 선물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감독과 구단이 마음을 합치고 한국배구연맹(KOVO)이 든든하게 후원한다면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것이 중요하다. V리그의 인기와 놀라운 잠재력을 확인한 것도 덤으로 얻은 성과다.
이런 자각은 이벤트에 참가한 감독과 선수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선수들은 화려한 이벤트나 강요하는 응원 없이 오직 배구만으로도 관중과 소통하면서 자발적인 호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서브를 앞두고 선수들의 팔 동작에 따라 쳐주는 관중들의 박수와 강 스파이크 때마다 나오는 함성이 입증해줬다. 벌써 몇몇 구단은 그동안 해왔던 응원유도 방식을 새로운 시즌에는 바꿀 생각까지 하고 있다. 팬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본 덕분이다.
그동안 V리그에 소외된 지역의 중요성과 뜨거운 배구열정도 새삼 확인했다. 지난 15시즌 동안 각 구단은 편의에 따라 훈련장 인근 수도권에 연고지를 정하고 V리그를 꾸려왔지만 생각 이상으로 배구시장은 넓고 탄탄했다. 보다 많은 지역에서 V리그가 열리기를 바라는 팬의 바람이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진제공|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배구단
● V리그에 소외된 팬을 생각하고 해법을 찾자
이번 행사를 지켜본 4개 구단의 단장들의 생각도 같았다. 연고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현행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신생팀 창단이 해결책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몇몇 큰 도시를 돌면서 라운드를 소화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겠다고 했다. 삼성화재의 유대웅 사무국장은 “지난 시즌 부산 경남 호남지역의 팬들이 대전까지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관전하러 오셨다. 눈에 띄게 그 수치가 늘었다. 우리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그 지역 팬들이 보다 가까운 곳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새로운 배구팀 창단을 원하는 기업이 선뜻 나서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른 길도 찾아봐야 한다. 팬들의 뜨거운 열망을 모아 프로축구처럼 시민구단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볼 때다. 복수의 향토기업에서 네이밍스폰서로 참여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 경기장과 훈련장 시설 등의 편의를 봐준다면 창단의 진입장벽은 의외로 낮아질 수 있다.
헌신적으로 썸머매치를 지원했던 부산시 체육회와 부산시 배구협회는 4개 구단에 “내년에도 또 하자”고 제안을 했다. 참여를 원하는 팀이 있다면 추가해서 판을 키우고 정례화하자는 말도 오갔다. 어느 감독은 해외의 팀도 불러서 국제적인 이벤트로 만들자고 했다. 또 다른 감독은 주변의 몇몇 도시를 돌면서 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이번에는 일정을 조율하지 못했지만 국가대표 팀도 원한다면 참가시키자고 했다. 남자구단뿐만이 아니다. 여자구단도 이번 행사에 자극을 받았다. 내년에는 같은 이벤트를 벌이기로 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팬들에게 V리그를 자주 소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내 고장에서 우리지역의 선수가 뛰는 경기를 보고 싶다는 열기를 자연스럽게 끌어 모은다면 창단으로 가는 길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부산은 이미 새 연고지로 합격점을 넘어섰고 썸머매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된 것이다.
사진제공|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배구단
● 감독들의 아이스크림 선물과 여오현의 추억 만들기
이번 행사에 참여한 감독들은 나와 내 팀 보다는 팬과 V리그를 먼저 생각했다.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팬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저녁 식사자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즉시 실행에 옮길 정도로 4명 감독은 팬 친화적인 생각을 가졌다. 그런 면에서 자기 카드로 현장에서 결제를 하고 관중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선물한 것은 상징적이다. 팬을 잊지 않고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 시즌에도 계속된다면 KOVO는 걱정할 것이 없다.
이와 함께 4개 팀이 부산지역의 유소년 학교 팀을 찾아다니며 배구클리닉을 해준 것은 V리그의 내일을 위한 좋은 투자였다. 22일 부산 수정초등학교에서 열린 배구교실에 참가했던 현대캐피탈 여오현은 “나도 이맘때 백구의 대제전에 참가한 선수들을 보며 꿈을 키웠다. 배구장에서 바닥을 닦고 볼보이를 하면서 코트를 뛰는 저런 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늘 배구교실에서 특별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을 주려고 한다. 그래서 선수들이 꿈을 가지고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10년 뒤 한 명이라도 V리그에 들어온다면 오늘의 배구교실은 성공한 것”이라고 했다.
팬과 배구 꿈나무, 감사하는 마음과 리그의 성공을 위한 협력과 희생. 출범 15년 만에 처음으로 스스로의 힘을 알아낸 V리그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