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바리니호의 아시아선수권 4강 좌초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입력 2019-08-25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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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배구대표팀 라바리니 감독. 스포츠동아DB

44년 만에 안방에서 대회를 개최해 사상 첫 우승을 노리던 한국 여자배구가 4강전에서 좌초했다. 대표팀은 24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제20회 신한금융그룹 서울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세트스코어 1-3(25-22 23-25 24-26 26-28)으로 역전패 당했다.

경기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지만 이번 패배는 너무나 뼈아프다. 지난 5월 팀을 맡은 외국인감독 라바리니는 물론 대한배구협회 집행부의 행보에도 큰 영향을 줄 결과다. 최근의 정치상황과 들끓는 반일 국민정서를 생각할 때 반드시 이겼어야만 하는 한일전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10대 중심의 어린 팀이었다. 일본은 9월 자국에서 개최하는 월드컵을 앞두고 1진 대표팀을 출전시키지 않았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관하는 20세 이하 세계청소년대회 우승멤버와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을 혼합했다. 우리의 1진이 이들에게 졌다는 것은 한국여자배구의 앞날이 더 어렵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에 속상하다.

2020도쿄올림픽 티켓이 걸렸던 대륙간세계예선 러시아전에서 다 잡은 승리를 놓친 것에 이은 또 한 번의 좌절이다. 이제부터는 라바리니 감독의 지도력을 놓고 예전과는 다른 냉정한 시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역대 어느 대표팀 감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인적 물적 지원을 풍족하게 받았지만 모든 이들의 기대했던 결과를 내지 못했기에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그동안의 한국배구사상 최초의 외국인감독이라는 프리미엄과 새로운 배구를 향한 팬들의 열망이 합쳐지며 그를 교주처럼 떠받들거나 한국배구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해줄 구세주처럼 여기던 시선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것이 정상이다. 냉정하게 따지면 그는 대한민국 배구에 고용된 사람에 불과하다. 고용주는 그에게 올림픽 본선출전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그동안은 원하는 요구를 다 들어줬다. 고용주가 가장 원했던 성과는 8월에 티켓을 따주는 것이었지만 실패했다. 이제 남은 기회는 내년 1월에 벌어지는 아시아대륙최종예선전이다. 모두의 예상대로 태국과의 맞대결이 되겠지만 현재의 경기력이 안심을 줄 정도의 수준이 아니어서 조마조마하다.

발리볼내이션스리그(VNL)~대륙간예선전~아시아선수권대회로 이어지는 3개월 동안 한국여자배구는 가동할 모든 자원과 충분한 훈련시간, 인적구성 등을 지원해줬다. 하지만 라바리니 배구는 이전의 지도자들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일본의 에이스 이시카와 마유처럼 희망을 줄 새로운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선수권대회 8강리그 태국전 2세트, 4강 한일전 2세트, 대륙간예선 러시아와의 3세트 역전패는 상징적이다. 한 자리에서 연속실점으로 경기를 그르치는 일이 반복되지만 아직 해결방법을 찾지 못했다.

일본과 태국과의 맞대결에서 확인된 것이 있다. 리시브와 수비, 연결의 정확성이 상대보다 눈에 띄게 떨어졌다. 기본기의 차이였다. 라바리니 감독은 유럽식 배구의 장점인 높이와 파워 스피드로 그 차이를 메우려고 했지만 선수들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이도저도 아닌 배구가 됐다. 감독은 수비보다는 공격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결정을 놓고 의문을 가지는 지도자들도 많다. 좋은 수비와 정확한 연결이 어설픈 공격과 붙었을 때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를 이번에 확인시켜줬다. 그동안 대표팀을 놓고 나도는 부정적인 얘기도 있었지만 대회를 앞두고 굳이 문제를 만들 이유도 없기에 입을 다물었지만 그동안 대표팀의 행보가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고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대표팀의 수준은 유소년배구와 학생배구, 정점에 있는 프로배구 리그에서 만들어진다. 대표팀에서 선수의 기량이 느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우리는 일본 태국과 비교해 선수 각자의 기본기 약점이 두드러진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라바리니를 데려왔다. 물론 그가 단시간에 모든 것을 해결하기를 바라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토종 지도자들과 한국배구가 쌓아올린 것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의 말도 귀담아 들었으면 한다.

이제 아시아대륙 올림픽 최종예선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월드컵 이후 대표선수들은 각자 소속팀으로 돌아간다. 김연경도 내년 1월에는 대표팀에 합류할 시간이 많지 않다. 소속팀 엑자시바시에서 보내주기는 하겠지만 FIVB의 규정대로 최소한의 일정만 허락할 것이다. V리그처럼 적극적으로 도와줄 상황은 아니기에 그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 결과에 실망했지만 그래도 라바리니 감독에게 2020년의 운명을 걸었기에 이제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 다만 대표팀의 행보를 보면서 걱정은 더 커졌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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