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의 새 시즌 키워드는 ‘믿음’이다. 최근 두 시즌 동안 성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권순찬 감독을 믿고 재계약을 이행하기도 했다. 권 감독 역시 선수들을 믿고 있다. 사진은 새 유니폼을 입고 새 시즌 각오를 다지고 있는 KB손해보험 선수단. 사진제공|KB손해보험 배구단
지난 시즌 6위에 그쳤던 KB손해보험은 권순찬 감독과 재계약을 맺었다. 전신 LIG손해보험을 포함해 V리그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재계약이 이례적일만큼 KB손해보험은 감독이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았다. 2010~2011시즌 준플레이오프 진출이 유일한 경험일 정도로 매번 봄 배구에서 탈락했다. 성적부진도 그렇지만 해결하지 못한 공수의 전력불균형과 세련되지 못했던 프런트 중심의 구단운영, 모래알 같은 팀 문화가 섞여서 묘하게도 선수들이 원래의 기량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팀이 되고 말았다.
권순찬 감독은 재임 첫해인 2017~2018시즌 승점4가 부족해 4위를 하고도 준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기대가 컸지만 지난 시즌 6위로 추락했다. 제천 KOVO컵에서 외국인선수 알렉스는 복근이 찢어졌다. 결국 시즌 도중 교체됐다. 개막전에서 주전세터 황택의가 발목을 다치면서 우왕좌왕했다. 펠리페를 영입한 뒤 시즌 막판에 반전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이 바람에 2+1계약을 맺었던 권순찬 감독의 행보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팀의 전례로 보자면 재계약이 힘들다고 봤다.
KB손해보험 산체스. 사진제공|KB손해보험 배구단
● 믿음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팀
지난 시즌 삼성화재와의 트레이드로 윙 공격수 김정호 정동근을 데려왔다. 이 트레이드 덕분에 수비와 리시브에 안정감이 생겼다. 반면 그동안 주전 윙공격수 역할을 했던 2명이 시즌 뒤 팀을 떠났다. 황두연은 군에 입대했고 손현종은 FA 선수로 이적했다. 커보이던 그 빈자리는 대한항공에서 김학민을 데려와 메웠다. 선수 생활을 끝내려던 김학민은 “함께 해보자”는 정성어린 손 편지를 써서 보여준 프런트의 마음에 감동했다. 결국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새 팀에 합류한 뒤 김학민은 웨이트트레이닝과 몸 관리 등에서 교훈이 됐다. 왜 그가 여전히 점프력이 상상초월인지, 조각 같은 몸과 체공능력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솔선수범으로 보여줬다. 신인드래프트에서 원했던 홍상혁도 품에 안았다. 대학배구 최고의 완성형 선수로 즉시전력이다.
신뢰로 팀을 이룬 또 한 명의 선수가 산체스다.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서 권순찬 감독은 오직 그만 바라봤다. 사실 트라이아웃에서 보여준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설렁설렁 거렸다. KB손해보험보다 우선권을 잡은 OK저축은행 석진욱 감독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많은 이들이 몸 상태와 대한항공 시절의 태도를 기억하며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반면 권순찬 감독은 믿었다.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 사진제공|KB손해보험 배구단
● 두려움 없는 배구와 체질개선으로 달라진 전력
권순찬 감독은 선수를 선택할 때 수비능력을 먼저 본다. 이전의 KB손해보험이 공격을 먼저 봤던 것과는 다르다. 그와 함께 얼마나 용감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는지를 따진다. 감독이 추구하는 배구는 두려움 없는 배구다.
시즌 준비과정에서 선수들은 이병희 체력담당 수석트레이너의 꼼꼼한 스케줄을 소화했다. 부상발생 빈도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두고 매주 수요일에는 스피닝과 수영으로 코어근육을 강화했다. 사천~제주~강릉 등에서 전지훈련도 했다. 팀워크와 체력을 다지기 위해 여름을 뜨겁게 보냈다.
우리카드와 3-3 트레이드를 했다. 하현용~이수황~박광희를 주고 김정환~박진우~구도현을 받았다. V리그 통산 블로킹부문 3위의 하현용을 내준 것이 아쉽다. 반면 더 젊은 박진우를 데려온 것이 위안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주전이 됐던 김정호의 성장과 한 시즌을 버텨줄 지속력이 중요하다. 그는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서 에이스의 역할을 하고 왔다. 수비와 공격은 만족스럽지만 아직 블로킹에서는 코칭스태프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 팀은 그가 대한항공 정지석과 같은 유형의 선수가 되기를 기대한다.
국가대표팀으로 차출된 세터 황택의가 동료들과 손발을 맞춰볼 시간이 모자란 것은 아쉽다.
대신 국제대회를 통해 잃은 시간만큼의 경험은 얻었다. 권순찬 감독을 누구보다 잘 따르는 황택의는 비시즌 동안 체력훈련을 많이 했다. 덕분에 상체 근육이 탄탄해졌다. 양준식도 시즌 준비기간 동안 체중을 많이 줄였다. 그 노력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최익제도 청소년대표팀에 뽑혔지만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성장속도가 느린 것이 아쉽다.
팀의 중앙을 책임지던 이선규의 은퇴와 하현용의 이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미들블로커 라인이 어떤 역할을 해주느냐가 시즌 성적의 변수다. 이전보다는 이름값에서 떨어진다. 김홍정이 중심을 잘 잡아줘야 한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