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고희진 감독. 스포츠동아DB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삼성화재는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고 한다. 꼭 돈을 많이 투자한 S급, A급 선수가 아니어도 경기에 뛰겠다는 열정이 넘치는 B급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면 어느 정도까지는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팀의 새로운 방향타를 잡은 고희진 감독은 “비시즌 동안 선수들이 준비한 것을 얼마나 발휘하는지 도와주려고 한다. 젊은 선수들이 경기를 통해 발전하고 그동안 해온 과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다소 철학적인 시즌 목표를 18일 한국전력과 시즌 첫 경기에 앞서 밝혔다.
삼성화재의 선수기용은 용감했다. 최근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3순위로 선발한 박지훈 주전 리베로로 투입했다. 현재 경기대 3학년이다. 고 감독은 “당차다. 4~5번의 연습경기를 통해 능력을 확인했다. 표정이나 배구를 대하는 자세가 당돌하다. 이런 선수가 우리 팀에 필요했다고 선수들과 스태프 모두 느꼈다”고 선발 이유를 밝혔다.
경기에 나가겠다는 열정으로 훈련 때부터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젊은 선수들이 뭉쳐서 만드는 신나는 경기. 지금 삼성화재가 원하는 모습이다. 이름값, 과거의 경력, 기록 등은 상관하지 않는다. 고 감독은 지금 가장 열심히 잘하는 선수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려고 한다. 선수들도 이 사실을 알기에 모두가 그 기회를 잡으려고 더 정성을 다한다.
주전 세터 김형진을 내주고 영입한 이승원도 뉴 삼성화재에서 새로운 선수로 탈바꿈하고 있다. 고 감독은 “한 달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이라며 아직은 기존 선수들과 호흡이 완전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변화는 보인다. 한국전력전에서 이승원은 0-2로 몰린 3세트부터 전혀 다른 세터로 변신했다. 1·2세트 1득점에 그쳤던 속공을 용감하게 시도했다.
3세트 7개의 속공득점이 나오면서 주전 평균 신장 198㎝인 한국전력의 높은 블로킹은 흔들렸다. 그러자 40%를 밑돌던 바르텍의 공격성공률도 치솟았다. 3세트 80%, 4세트 100%로 팀이 추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5세트 12-11로 한국전력이 맹렬히 추격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삼성화재라면 상상도 못할 연결마저 나왔다. 위급한 상황에서라면 공식처럼 올려주던 외국인선수 대신 이승원의 연결은 2년차 신장호에게 향했다. 그 클러치 공격이 통하고, 신장호가 블로킹까지 성공하면서 삼성화재는 매치포인트에 도달했다.
V리그 데뷔전에서 39득점, 61%의 공격성공률로 의문부호를 지운 바르텍은 최근 사무국장과 식사 자리에서 “내가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줘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열정적인 젊은 선수들에게 필요할 때마다 용기를 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름값, 기량보다는 하겠다는 선수들의 열정과 의지, 자세 같은 ‘팀을 위한 헌신’을 더 중시하는 삼성화재는 21일 대한항공을 상대로 변화의 성공 여부를 또 한 번 테스트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