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 김정호(왼쪽)-황택의. 스포츠동아DB
예를 들면 V리그 챔피언 결정전 5차전 파이널 세트 14-13, 상대의 서브 때다. 많은 선수들은 서브가 네트에 걸리거나 최소한 자신에게 오지 않기를 바란다. 리시브를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은 먼저 부정적 생각부터 떠올린다. 반면 슈퍼스타로 불리는 선수들은 자신이 그 서브를 받아서 경기를 끝내길 원한다. 이들은 보통 선수들보다 심장의 두께가 다르기에 같은 상황에서 정반대의 생각을 한다.
자유계약으로 신인을 뽑던 실업배구 시절 우승팀 선수는 같은 기량의 다른 팀 선수보다 계약금을 더 받았다. 긴장된 순간을 이겨내는 배짱과 노하우가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22일 KB손해보험은 어쩌면 이번 시즌의 전환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개막 이후 한창 기세 좋게 앞서나가다가 최근 3연패에 빠졌다. 8일 우리카드전에선 상대 알렉스가 라이트에서 퍼붓는 엄청난 공격을 막아내지 못해 0-3으로 완패를 당했다. 12일 대한항공전에선 두 세트라도 따낸 것이 다행이었을 정도로 상대의 리시브가 완벽했다.
최악은 17일 삼성화재에 당한 패배였다. 외국인선수가 없는 하위팀을 상대로 너무 무기력했다.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때려대는 상대의 서브에 리시브가 흔들리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의 입에서 “나도 빨리 집에 가고 싶지만 경기는 끝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요즘 기세등등한 한국전력을 맞아 22일에도 고전이 예상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전력이 장병철 감독의 표현대로 “드릴 말씀이 없는 완패”를 당했다. KB손해보험은 이날 리시브~연결~공격과 수비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같은 팀이 이처럼 며칠 사이에 최고와 최저를 오르내릴 정도로 배구는 변화무쌍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결국 KB손해보험 선수들의 달라진 마음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날 한국전력이 ‘서브 폭탄’을 퍼부었지만 버텨내면서 공격까지 잘했던 KB손해보험 김정호는 지난 시즌과 가장 달라진 것으로 에이스의 책임감을 언급했다. 그는 “이전까지는 남을 거들어주는 선수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감독님과 동료들이 에이스라고 말하니까 점점 그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팀의 플레이 모양을 결정하는 세터 황택의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연패를 많이 겪어서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극복할 수 있다. 작년 12연패 때는 코트에 있으면 두려웠다. 세터라 공을 많이 만지는데 그것이 싫었다. 그 때는 공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두려웠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고 재미있게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의 발언은 심장의 두께도 주위의 격려와 스스로의 자각을 통해 두꺼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게 본다면 처음부터 배짱을 타고난 선수는 없다. 경험, 주위의 격려와 지도로 배짱은 만들어질 뿐이다. 호랑이가 백수의 제왕이 된 것은 호랑이로 태어나서가 아니라 호랑이굴에 함께 살며 많은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