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이다영 자매. 스포츠동아DB
시발점은 10일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현직 배구선수 학폭 피해자들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글쓴이는 가해자들의 사과를 요구하는 동시에 피해를 당한 21가지의 일들을 나열하는 한편 “‘괴롭히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죽고 싶다’는 글을 가해자가 올렸는데, 본인이 했던 행동들은 새까맣게 잊었나보다”며 분노했다.
이 글이 주목을 받자 가해자로 지목된 선수측은 글쓴이에게 연락을 취한 뒤 소셜미디어(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사건의 가해자는 흥국생명 레프트 이재영과 세터 이다영이었다. 쌍둥이 자매인 둘은 국가대표팀의 주축이기도 하다.
이다영이 지난해 12월 자신의 SNS에 소속팀 선배를 비난하는 뉘앙스로 “괴롭히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죽고 싶다”는 글을 남긴 것이 피해자를 자극했다. 이재영은 “자숙하고 평생 반성하며 살아가겠다”, 이다영은 “깊은 죄책감을 갖고 자숙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들의 소속팀 흥국생명 구단도 “선수들이 충분히 반성하도록 할 것이며 앞으로 선수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약속했다.
설 연휴 내내 파문을 낳은 이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논란이 불거졌다. 13일 한 포털사이트에 ‘현직 남자배구선수 학폭 피해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용기 내는 피해자들을 보고 저도 용기를 낸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폭행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고환봉합수술을 받은 사실까지 털어놓으며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송명근-심명섭.
가해자는 OK금융그룹 송명근(28)과 심경섭(30)이었다. 이들의 소속팀은 곧바로 보도자료를 통해 “팬 여러분들을 실망시킨 점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는 이날 오후 “구단 측 공식 입장문을 확인했지만, 진심어린 사과를 느낄 수 없었다”며 “‘수술 치료 지원 및 사과가 있었음을 확인했다’는 구단의 입장은 사실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송명근은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학폭 사실을) 전부 시인한다. 나는 가해자가 맞다”며 “자숙의 의미로 내일(15일) 이후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것을 감독님을 통해 구단의 허락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구단도 “사태 심각성을 감안해 선수들의 의사를 수용하기로 했다”며 “신속한 선수단 전수조사와 함께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여기에 이재영과 이다영에 대한 추가폭로도 이어졌다. 13일 밤 ‘또 다른 피해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글쓴이는 이들과 함께 운동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대한체육회 선수등록정보까지 첨부했다. 이 피해자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과 흥국생명 구단의 미온적 대처에 특히 분노하며 “조용히 잠잠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과거의 일들이 하나씩 더 올라오게 될 것이다. 아직도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또 전 재산을 다 줘도 피해자들이 받았던 상처는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V리그는 2011~2012시즌 도중 승부조작 파문이 불거져 큰 홍역을 앓았지만, 다행히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다시 인기를 끌어올린 덕분에 겨울스포츠의 꽃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기에 취한 일부 스타선수들의 학폭 논란이 불거지면서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해당 선수들은 물론 V리그 차원의 성찰과 수습책 찾기가 절실하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