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정답도 없는 근원적인 문제를 거듭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작가가 산티아고를 걸은 후에 느낀 것들을 이 책에 투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를 괴롭히던 철학적인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산티아고 길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산티아고 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명인 야곱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의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와 프랑스 생장(Saint Jean)을 잇는 800km 길이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조개 껍질이 달린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이 먼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곳이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순례를 준비했다.
새벽부터 순례를 준비하는 부지런한 순례자들의 움직임 때문에 덩달아 일찍 잠에서 깼다. 순례자들을 위한 저렴한 숙소인 ‘알베르게’는 한방에 보통 20개의 침대가 빼곡하게 줄지어 있기 때문에, 굳이 잠귀가 밝지 않은 사람이라도 일찍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첫날부터 거친 산맥을 지났으니, 오늘은 평탄한 길을 만나 목적지인 ‘팜플로냐’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를 하며 길을 나섰다.
며칠 후,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스페인의 리오하(La Rioja) 지역에 도달했다. 하루의 순례를 마친 후, 목적지에 도착하여 마시는 3유로짜리 싸구려 와인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헀다. 술에 취해 조금은 느슨해진 몸과 마음으로 다른 순례자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웠다. 국적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다소 허무하고 의미 없는 이야기에도 자지러질 듯이 웃었다. 낮에는 머리를 비우며 걷고, 밤에는 침낭에 몸을 파묻는 순간까지 웃고 떠들며 모든 걱정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점점 산티아고 길에 익숙해져 갔다.
길을 떠난 지 한 달이 조금 지날 무렵,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stela)에 도착했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에 걸음을 늦추며 마지막 순례길을 미뤄왔건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기 전에, 산티아고 대성당을 찾았다. 성당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나를 산티아고 길로 이끌었던 파울로 코엘료 作 ‘연금술사’의 한 구절이 생각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의 소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와 준다’는. 아무도 내 소망은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했지만, 사실은 내가 온 우주는 커녕 한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간절함이 부족했다는 것을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800km를 걷고 나서야 비로소 간절함의 힘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