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현수(광저우 푸리)는 1월에 펼쳐진 2015호주아시안컵을 통해 스스로 한 단계 성장했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자신을 ‘5분 대기조’로 표현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A매치 앞두고 소집 때마다 촉각 기울여
인천아시안게임·아시안컵 통해 더 성장
볼프스부르크 관심…이적 여부 떠나 감사
3년뒤 러시아월드컵 ‘준비된 선수’ 자신
한국은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지난달 호주에서 펼쳐진 대회에서 55년만의 정상 탈환에는 실패했지만, 태극전사들의 열정은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장현수(24·광저우 푸리)에게도 이번 아시안컵은 아주 특별한 무대였다. 중앙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 때로는 측면까지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다. 선발 출격, 교체 투입도 있었지만 구애받지 않았다.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6경기에 모두 나섰다. 대표팀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의 신뢰는 그만큼 각별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장현수를 아끼고 믿었다.
사실 슈틸리케 감독은 알 사일리아(카타르)를 이끌 당시 FC도쿄(일본) 소속 장현수의 영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클럽에서 인연은 닿지 않았지만, 국가대표팀에서 사제로 만났다.
그렇다고 슈틸리케 감독이 항상 장현수에게 100점 만점을 준 것은 아니다. ‘졸전’이었다고 혹평 받은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2차전 이후 슈틸리케 감독과 개인면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이 챙겨온 고무줄을 손가락에 끼워 길게 당겼다. “새총을 쏠 때 적당히 고무줄을 당겨야 정확한 조준과 적당한 힘으로 목표물을 맞힐 수 있다. 횬수(발음상 장현수를 이렇게 부른다)는 너무 길게 고무줄을 당겼다. 결국 줄이 끊어지면 네가 아플 수 있다. 이를 염두에 뒀으면 한다.” 그제야 장현수도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신의 축구인생에서 평생 기억될 한 페이지를 넘긴 그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결승전 막판에는 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쥐가 났다. 발목 아프고 무릎 아픈 건 잘 버티는데, 쥐가 나니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내 역할은 아주 간단하다. 수비와 간극을 좁히고, 빈 공간을 틀어막고, 상대와 경합하고.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호주 애들을 더 힘들게 했어야 했는데, 제대로 뛰지 못해 민폐만 끼쳤다. 교체카드도 다 사용했는데…. 경기 후 눈물만 쏟았다. 정말 애절했고 간절했다. 정말 ‘인생의 경기’였다.”
-아시안컵은 어떤 대회였나.
“40여일의 짧고도 긴 기간, 할 수 있는 경험을 많이 해봤다. 국가대표라면 기복이 없어야 하는데, 경기력이나 여러 모로 50점도 줄 수 없었다. 기복도 심했다. 물론 배운 것도 있다. 스스로의 플레이에 만족할 수 없는 와중에도 좌절만은 할 수 없더라. 내가 좌절하고 사기가 꺾이면, 23명에서 이미 21명까지 줄어든 동료들에게 큰 피해를 주니까. 엎어지고 넘어져도 일어서야 했다. 그렇게 배우고 성장했다.”
-(부상으로 빠진) 런던올림픽도 사실 성장의 계기가 아니었나.
“그 때의 아픔으로 마음이 컸다. 너무 몸이 좋았기에 갑작스런 부상은 정말 당혹스러웠다. 축구의 간절함도 알았다. 사실 혼자 재활하려 했는데, 팀(도쿄)이 불러들였다. 사람을 만나는 게 싫어 혼자 훈련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팀 동료들의 훈련을 보면서 축구를 너무 하고 싶어졌다. 전치 12주가 9주까지 줄었으니 멘탈도 아주 강해졌다. 나중에 팀 닥터가 그랬다. ‘너 혼자 훈련했으면 이렇게 빨리 돌아올 수 없었다. 다 널 위해서였다’고. 아시안게임과 아시안컵까지 연이어 열린 큰 무대에서 결승전을 모두 뛰었으니 난 정말 복 받은 놈이다.”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어느 정도 언질은 받고 있었다. 이적 여부를 떠나 그저 감사할 일이다. 나라는 존재와 이름을 알아줬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건지. 경기력도, 플레이도 만족할 수 없었음에도 언젠가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꾸준히 관심을 받기 위해선 대표팀에도 계속 승선해야 하고, 꾸준히 일정 수준 이상의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기복이 심하면 절대로 큰 선수가 될 수 없다.”
-여러 감독들은 거쳤는데.
“연령별 대표팀에 있을 때부터 내게 홍명보 선생님은 롤 모델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 분을 따라하려 노력했고 부지런히 연습도 했다. 20번이란 숫자를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다. 누군가 인생을 살면서 존경하는 롤 모델을 가까이서 접하는 건 흔치 않은데, 난 그 분에게 직접 축구를 배웠다. (아시안게임) 이광종 감독님은 ‘팀’과 ‘하나됨’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시고, 또 잠재력을 밖으로 표출하게끔 해주신 분이다. 슈틸리케 감독님이야 말할 것도 없다.”
-남은 메이저대회는 월드컵이다. 3년 뒤 러시아대회가 있다.
“생각대로 되는 건 없다. 냉정히 볼 때 난 뽑아도, 뽑지 않아도 될 경계선에 놓인 작은 선수다. 대표팀이 A매치를 앞두고 소집될 때마다 촉각을 기울여야 하는 ‘5분 대기조’다. 그래서 분명한 건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만큼은 자신할 수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