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허정무 감독(왼쪽)과 공격수 이동국이 10일(현지시간) 남아공 루스텐버그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인터뷰에서 서로에 대한 민감한 이야기를 털어 놓아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허정무 “45분만이라도 제대로 뛰어라”
이동국 “난 전북서 믿음으로 부활했다”
예민한 시기에 감독과 선수 사이에 민감한 말들이 오고 갔다.이동국 “난 전북서 믿음으로 부활했다”
허정무 감독과 공격수 이동국(전북)은 10일 오후(이하 현지시간) 대표팀 숙소인 루스텐버그 헌터스레스트호텔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때 자신들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듣는 이에 따라서는 갖가지 추측을 낳게 하는 말들이어서 그 발언의 의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동국은 9일 잠비아전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을 보인 채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아웃됐다. 허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반 경기라도 제대로 할 선수가 필요하다”며 이동국의 플레이에 불만을 표시했다.
다음날 기자들을 통해 이를 전해들은 이동국은 “감독님의 지적은 전혀 몰랐다. 경기가 안 풀리면 그런 문제가 나온다. 경기가 잘 풀리면 그런 문제가 안 나온다. 감독님의 판단이 정확할 것이다”고 인정했다.
여기까지는 명쾌하다. 이동국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하지만 다음 말이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다.
“선수와 감독은 믿음이 중요하다. 내가 왜 전북에서 성공했겠는가”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대표선수 입장에서 소속 클럽 감독과 대표팀 감독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무리수일 수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허 감독의 믿음이 약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이동국은 지난 시즌 최강희 전북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동국의 정확한 의도를 꿰뚫기는 힘들어도 그의 말에는 어느 정도 불만이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이동국은 4일 출국 전 인터뷰에서 “풀타임을 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남아공 전지훈련의 가장 큰 목표”라고 했지만, 막상 잠비아전에서 45분만 뛰고 교체된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낸 듯 하다.
비슷한 시간 허 감독도 수위 높은 발언을 했다.
그는 “월드컵에서 일을 칠 수 있는 국내파 선수가 한 명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동국, 하태균, 김신욱 등 타깃형 공격수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어쩔 수 없다. 억지로 데려가진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경기력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엔트리 제외 가능성까지 내비쳤다는 측면에서 파장을 몰고 오기에 충분하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동국의 플레이에 대한 실망감이 직접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허 감독의 노림수일 수도 있다. 자극을 통한 ‘길들이기’로 이동국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풀이할 수 있다.
‘마지막 길들이기’냐 ‘믿음의 부족이냐’.
과연 두 사람의 진정한 속마음은 어떤 것일까.
루스텐버그(남아공) |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