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스포츠동아 DB
네덜란드와의 98프랑스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이 열린 1998년 6월20일 마르세유 벨로드롬. 한국이 0-3으로 뒤진 후반 32분 19세 앳된 청년이 서정원을 대신해 필드에 들어섰다. 5만5000여 관중들을 놀라게 한 과감한 중거리 슛.
방심하던 네덜란드 골키퍼 반 데르 사르는 뒤로 넘어지며 간신히 볼을 쳐냈다. 비록 0-5로 졌지만 한국 축구는 이후 청년의 이름을 오래 기억하게 됐고, 희망을 봤다. 이동국(31·전북)이 월드컵 무대에 첫 걸음을 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 이동국이기에 겪는 모진 풍파
‘비운의 사나이’란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2002한일월드컵 때는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고, 4년 뒤에는 승선이 유력했지만 십자인대 파열로 날개를 접었다. 마지막 도전을 부르짖으며 남아공월드컵 예비 명단 26명에는 발탁됐지만 이번에는 16일 에콰도르와 평가전 때 입은 허벅지 뒷 근육이 말썽이다.
허정무호가 최종 엔트리(23명)를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출할 시기는 6월 1일. 선택의 시간은 사흘 밖에 남지 않았다.
이동국은 28일(한국시간) 베르하이옌 피지컬 트레이너의 지도 하에 노이슈티프트 캄플 구장에서 비공개 특별훈련을 했다. 허 감독에게 이동국 카드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허 감독은 6월12일 그리스와 1차전까진 이동국의 출전이 어렵다는 걸 안다. 설사 회복되더라도 컨디션을 100% 끌어올리기 어렵다. 허 감독은 “이동국이 꼭 필요하지만 회복 정도와 기용 가능성 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종합적인 판단을 하겠다”고 했다.
대표팀은 이동국을 최종 엔트리에 승선시켰다가 최악의 경우, 경기 24시간 전까지 다른 멤버로 교체하도록 한 FIFA 룰을 활용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 몸 상태는 어느 정도?
대표팀은 총력 지원체제다.
다른 멤버들은 훈련 뒤 한 차례 마사지를 받지만 이동국에게는 의료진 전체가 투입돼 수시로 치료를 한다. 그래서일까. 몸이 꽤 올라왔다. 이날 전격적으로 이뤄진 슛 연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트레이너와 볼을 가볍게 주고받는 수준이었지만 조기 회복도 가능하다.
과거 사례에 따르면 ‘슛 연습=회복’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당기는 느낌과 통증도 거의 사라졌다는 전언이다.
뜀뛰기와 스텝에서도 활발했다. 상황은 다르지만 박주영도 슛이 가능해지자 팀 훈련에 가세했고, 금세 복귀할 수 있었다.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이유다. 허 감독은 훈련 뒤 최주영 재활 팀장에게서 결과를 보고받았다. “훈련과 러닝 때 느끼지 못해도 경기를 하다 순간적으로 힘을 쓰고, 스피드에 변화를 주면 이상이 올 수 있다”는 게 허 감독의 얘기.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인상이다. 한국 축구 전체가 이동국 한 명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그냥 떠나보내기에는 아쉽다.
노이슈티프트(오스트리아)|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