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지난 2008년 10월 처음 주장 완장을 찼다.
허정무(54) 감독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차전에서 김남일(빗셀고베)이 경고누적으로 뛰지 못하게 되자 박지성에게 주장을 맡겼다.
대표팀의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코칭스태프들은 이영표(32)를 주장 후보에 올렸다. 이운재(36.수원)가 아시안 컵 음주파문으로 1년간 대표팀을 떠나 있는 상황에서 가장 성실하고 나이 때도 맞는 이영표가 임시 주장으로 가장 적합한 선수라는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허 감독은 초지일관 박지성이었다. 박지성도 허 감독의 뜻을 군말 없이 받아 들였다. 그리고 박지성은 대표팀을 확 뜯어 고쳤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경험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선후배간의 벽을 허물었다. 홍명보-이운재-김남일로 이어지던 ‘카리스마형’ 주장들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선배들에게는 친동생처럼 후배들에게는 친형 같이 다가갔다. 다소 권위주위적이던 과거 대표팀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변화시키면서 대표팀 내 잠재되어 있던 최상의 경기력을 이끌어냈다.
박지성은 평소 조용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코칭스태프들에게 할 말은 했다. 훈련 스케줄은 하루 전날에 알려달라고 했다. 또 선수들이 의기소침해 있으면 허 감독에게 훈련 시간을 조절해 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선수와 선수 사이의 소통 뿐만 아니라 감독-코칭스태프와 선수간의 소통에도 가교역할을 하며 팀을 하나로 결속시켰다.
그는 매 훈련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맨유에서 성공신화를 이룬 근간이 됐던 성실함은 대표팀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의 리더십은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이어졌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세 골로 팀 내 가장 많은 골을 터뜨리며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세 대회 연속 득점 행진도 이어갔다. 2002년 한일월드컵 포르투갈과의 조별예선 최종전에서 데뷔골을 넣은 뒤 독일월드컵 프랑스전 동점골에 이어 남아공월드컵에서도 그리스와의 1차전에서 추가골로 제 몫을 다했다.
특히 어린 선수들에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 등으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들려주며 힘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박지성의 부드러운 리더십 뒤에는 남모를 고통도 숨어 있었다. 그는 지난 23일 나이지리아와 무승부를 거두고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룬 뒤 그간 주장으로서 받은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이번 대회 주장을 맡으며 앞선 주장 선배들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절감하고 있다. 단순히 왼쪽어깨에 차는 완장이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박지성은 겸손했지만 허 감독은 그가 주장으로서 대표팀을 이끈 역할에 대해 200% 만족했다. 우루과이와이 16강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허 감독은 “주장 박지성에게 120% 만족하고 있다. 우리나라 축구팀을 위한 최고의 주장으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 고민하는 후배들과 선배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고민도 많고 머리 아픈 일도 많겠지만 잘 해내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다”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비록 허정무호의 무한 질주는 16강에서 멈춰 섰지만 허 감독의 가슴 속 영원한 주장은 사상 첫 원정 16강을 함께 일군 박지성일 것이다.
포트엘리자베스(남아공)=김진회 동아닷컴 기자 manu3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