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토피아] 조용히 세대교체한 삼성, 높은 기대치 독이 된 LG

입력 2015-08-3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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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류중일 감독-LG 양상문 감독(오른쪽). 사진|스포츠코리아·스포츠동아DB

삼성 류중일 감독-LG 양상문 감독(오른쪽). 사진|스포츠코리아·스포츠동아DB

삼성, 이지영 성장에 진갑용 은퇴 선뜻
큰 관심 부담 LG, 당일 경기에만 올인
훈수꾼 탓에 베테랑 ‘가지치기’도 실패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4시즌 연속 통합 챔피언 삼성도 움직였다. 삼성은 통합 4연패를 달성하는 동안 4명의 주력투수(오승환·권혁·배영수·정현욱)를 떠나 보냈다. 큰 출혈이었지만 대안을 찾아냈고, 여전히 삼성은 강하다. 물론 류중일 감독은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2군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선수가 없다”며 위기론을 꺼내곤 한다. 그런 류 감독은 시즌 도중 주전포수 진갑용을 은퇴시켰다. 우승반지를 7개나 지닌 베테랑 포수를 미련 없이 정리했으니 류 감독은 용감하다.


● 흔적 없이 중요 포지션의 세대교체에 성공한 삼성


류중일 감독도 진갑용의 은퇴를 말리고 싶었을 것이다. 류 감독은 “(진갑용을) 부상으로 2군에 내려 보낸 뒤 다시 올리려고 했지만 더 이상 못하겠다고 했다”고 은퇴 배경을 설명했다. 진갑용이 구단에 먼저 은퇴의사를 밝힌 뒤 따로 류 감독을 만났다. 진갑용은 그 자리에서 “운동하는 것이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류 감독이 선선히 은퇴를 허락한 것은 2시즌 동안 진갑용 없이 포스트시즌을 해봤고, 결과도 좋았다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삼성은 ‘포스트 진갑용’ 카드를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 올 시즌 이지영과 이흥련의 성장을 확인하면서 결단을 내렸다. 운 좋게도 올 시즌 새로운 야수 재목 구자욱을 찾아낸 삼성을 보면서 모 구단 감독은 “정말 무서운 팀이다. 조용히 리빌딩을 하고 있다”고 감탄했다. 삼성의 행보는 강팀이 진행하는 세대교체의 성공사례를 잘 보여준다. 이기면서 남들도 모르게 하는 세대교체. 예전 해태와 김응룡 감독이 이런 세대교체를 잘했다.


● 리빌딩과 권력화된 베테랑

9월이 다가오면서 가을잔치에 나갈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언론에선 몇몇 팀의 리빌딩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아직 어떤 팀도 공개적으로 리빌딩을 말한 적은 없다. 리빌딩에는 책임 소재가 따른다. 팬들의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구단이 먼저 언급하면 현장은 성적 부진의 면죄부를 받는다.

리빌딩은 선수를 재고관리 차원에서 팔고 사는 메이저리그에서나 가능하다. 우리는 선수를 쉽게 사오지도, 유망주를 받지도 못한다. 약팀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쉽게 강팀이 될 수 없다. 리빌딩이 근본적으로 어려운 이유다. 한화가 김응룡∼김성근 감독 체제로 넘어가면서 500억원을 넘게 썼지만, 지금 5강 문턱에서 허덕인다. 구단의 정책판단 미스가 만든 결과다. 그 전에 수차례 신인드래프트에서 적정 규모로 선수를 뽑지 않았고, 육성도 외면했다. 과거 한화 프런트가 선수의 부가가치가 갈수록 높아지는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현상에만 안주하려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것이다.



몇몇 하위권 팀들은 최근 어린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많이 주고 있다. 다음 시즌에 대비한 것이지만, 지는 경기 또는 승패의 긴장감이 없는 경기에서 선수가 배우는 것은 기대만큼 많지 않다. 선수 육성에는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유망주를 경기에 던져놓고 ‘네가 알아서 크라’고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두산, 넥센, NC의 육성 성공사례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올 시즌 KIA 김기태 감독의 결정은 무모한 도전이 만든 기적 같은 성공사례다.

변화를 위해선 용감해야 하지만, 국내 구단들은 매스미디어와 팬들의 반발을 유난히 두려워한다. 어느 전문가는 “인터넷 댓글이 우리 프로야구를 좌지우지 한다”고 한탄했다. 그 정도로 일부 구단은 운영 철학도, 비전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미 정점을 지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팀의 발전에 문제가 되는 선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을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 지금 일부 스타급 선수는 구단도 상대하기 버거운 권력이다.


● LG의 시즌 실패 이유는 무엇일까?

LG는 사실상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워졌다. 구성원 대부분이 “이번 시즌은 어렵다”고 자각하는 눈치다. LG 모 코치는 “모두가 죄인의 심정으로 산다. 시즌 뒤 구단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왜 LG는 이번 시즌 실패했나’라고 물었다. 그는 “해줘야 할 선수들이 하지 못했다. 실패의 책임은 감독, 코치, 프런트의 순으로 지고 마지막은 선수다. 선수 중에는 몸값이 비싼 선수가 더 많은 책임을 진다. 그러려고 연봉을 많이 주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LG의 베테랑들, 몸값이 비싼 선수들은 올 시즌 기대만큼 하지 못했을까. 자칭 전문가란 사람들이 이런 저런 훈수도 하고 문제점도 내놓지만,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내부에 있다. LG 코칭스태프와 프런트가 여러 각도로 이유를 알아보고 해결해야 한다. 주위에서 나오는 말들을 종합하면, 세대교체의 실패 탓이라고 한다.

LG 양상문 감독은 “어떤 감독도 세대교체를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성적을 내지 못하면 내가 물러나야 하는데, 어느 누가 다음 사람 좋으라고 세대교체를 하겠는가”라고 밝혔다. 감독은 오늘의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고, 구단은 내일의 전쟁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 현장과 프런트가 이 역할 분담에 충실하고 서로를 도와야 했지만, LG는 훈수꾼의 말처럼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 팬과 높은 기대치, 그룹 임원들의 뜨거운 선수사랑이 독이 된 LG


수도 서울의 인기구단 LG는 항상 성적 부담을 지니고 있다. 팬들의 열성도 뜨겁다. 프로야구의 흥행을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다보니 모든 정책의 기준점이 오늘 경기, 올 시즌이었다. 미래가 끼어들 틈과 여유가 없었다. 좋은 유망주를 많이 뽑아뒀지만, 이들을 잘 키워서 내일을 준비할 마스터플랜을 갖지 못했다. 프런트가 이 책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몇 차례 판단 미스를 하는 바람에 좋은 선수를 다른 팀에 많이 넘겨줬고, 기대주들은 이상하게도 LG라는 텃밭에선 성장하지 못했다.

LG는 팀에 불필요한 선수를 정리하는 가지치기에도 실패했다. 외부의 훈수꾼 탓이었다. LG에는 야구단과 선수들에게 애정이 많은 임원들이 많았다. 이들이 몇몇 선수들을 감싸고돌면서 생각하지도 못한 부정적 결과가 나왔다. 팀 케미스트리의 문제는 LG를 떠난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잘 파악할 수 있다. 세상의 어떤 선수도 영원할 순 없다. 그것이 야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의 생태계다. 구단이 그런 생리에 따라 베테랑을 정리하고 싶어도, 외부의 압력이 두려워 움직이지 못한 결과가 2015년 LG의 현주소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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