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영어태교한딸한글사랑끔찍

입력 2008-07-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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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이만큼은 정말 잘 키우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임신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제가 전공한 영어를 기똥차게 잘 하게 하려고, 영어사전을 줄줄줄 읽고 다녔습니다. 저는 20대 때, 잠깐 미국에 공부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영어가 안 돼서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한번은 감자튀김이 먹고 싶어서 패스트푸드점 점원한테, “포레이로∼ 원 플리즈으∼∼∼” 라고 했습니다. 점원이 못 알아듣고, 다시 얘길 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감자가 포테이토 맞지?’하고 한 번 더 생각한 다음에, 혀를 더 잔∼뜩 굴려서 “음∼ 포레이로 플리즈∼” 했는데, 이 미국인은 또 못 알아듣겠다고 그러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포!테!이!토!!!”하고 큰 소리로 말했더니 그 사람이 알아들었다고 하면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슬프던지… 전 그 때 ‘난 영어가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크게 낙심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어서 더 열심히 공부를 했고, 그 결과 학교 영어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내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게 되면, 진짜 영어만큼은 박사로 만들어줘야지 하고 늘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영어사전을 읽어주는 태교를 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저는 언제나 영어로만 이야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갓 돌이 지난 우리 딸은, 엄마의 지극한 정성을 몰라주고, 영어로 얘기만 하면 고개를 휙 돌리며 모른 척을 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더 열심히 영어로 말을 했는데, 우리 딸은 그럴수록 더 싫은 티를 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제가 혼자 얼마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그러던 어느 날, 저희 부부가 딸을 데리고 노래방엘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거룩하게 ‘문리버’를 열창하며 한껏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저희 남편은 ‘또야?’하는 표정으로 인상을 쓰며 노래방 책을 뒤적거렸습니다. 제 노래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남편은 갑자기 취소 버튼을 누르더니 자기가 선곡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선택한 노래는 ‘아에이오우’ 였습니다. 사실 저희 남편 직업이 국어선생님입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다가 결혼까지 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남편은 ‘아에이오우’를 열창하며 저희 딸아이를 보고 한번 씽긋 웃어주었습니다. 딸아이도 그걸 보며 좋아서 까르르 웃었는데, 그 순간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제 막 돌이 지난 딸이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 에.. 오우” 발음을 했습니다. 저희 남편은 노래도 멈추고 딸아이의 조그만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갑자기 저를 향해 “여보∼ 우리가 천재를 낳았다∼ 저 쪼그만 게 아에이오우 하는 거 봐봐∼ 너무 똑똑해∼” 이러면서 외쳐대는데, 저는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집에서 알파벳 노래 “♪ A B C D E F G∼♪” 하면서 노래 부를 땐 꿈쩍도 안 하더니, 어떻게 ‘아에이오우’라는 노래엔 바로 반응을 하는 건지… 결국 저는 딸아이를 위하여 교육 시스템을 새롭게 바꾸게 되었습니다. 방안 가득 붙여놨던 ABCD 글자판을 다 뜯어내고, 대신 가나다라로 되어 있는 새로운 글자판을 방에 붙여줬습니다. 요즘은 눈을 마주치며 아주 열심히 한글교육을 시켜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에이비씨’ 때 보다 훨씬 빠르게 한글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 사람이 한국말부터 배우는 게 맞는데, 제가 너무 영어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어교사인 저는 오늘도 한글책을 펴놓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딸이 한국어를 정확히 알고 제대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새로운 욕심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예쁘게 키워서 아나운서를 시킬지도 모릅니다. 우리 딸 방송에 나오면 예쁘게 좀 봐 주세요! 경기 평촌|박미경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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