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쾌속을넘어선광속의행마

입력 2008-09-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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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몸싸움 한 번 없이 흑과 백은 제 갈 길을 가는 데에 여념이 없다. 윤찬희는 나이답지 않게 차분한 기풍으로 알려져 있다. ‘이창호 키드’답게 이창호류에 충실하다. 도발하기보다는 지키는 쪽을 선호한다. 어지간히 열 받지 않고서는 좀처럼 자신의 진영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윤찬희가 이 바둑에서만큼은 과격하리만치 발 빠른 행마를 시도하고 있다. 조훈현 저리가라의 쾌속행마이다. 곳곳에서 흥분의 냄새가 땀처럼 배어있다. 도대체 무엇이 ‘순둥이’ 윤찬희의 역린을 건드린 것일까? <실전> 흑3도 윤찬희의 도발이다. 평범하게 둔다면 <해설1> 흑1 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해놓고 천천히 가자는 발상이다. <실전> 흑9도 마찬가지. 쾌속을 넘어선 ‘광속’의 행마이다. 빠른 행마는 큰 곳을 선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바둑이 엷어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남는다. 발 빠른 권투선수치고 맷집 좋은 사람 못 봤다. 이 판 역시 곳곳의 흑이 엷다. 사방이 급해졌다. <실전> 흑17은 실수. 두 사람은 복기에서 <해설2>에 동의했다. 흑은 1로 두었어야 했다. 그래도 흑의 모양이 우그러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엷음에 대한 응분의 대가이다. 이 정도를 감내할 수 없다면 ‘액셀레이터’를 밟을 자격이 없다. 반면 목진석은 이런 흐름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 그는 자타가 알아주는 난전의 명수. 바둑이 치열해질수록, 돌과 돌이 몸을 부딪칠수록 그는 힘을 낸다. 게다가 흥분은 승부의 대척점에 서 있다. 승부사도 인간인 이상 흥분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먼저 흥분하지 않을 수는 있다. 오늘은 윤찬희가 알아서 먼저 흥분해주고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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