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아시아의 호랑이´가 오랜만에 포효했다. 허정무호가 안방에서 아랍에미리트(UAE)를 완파하며 남아공으로 가는 길의 본 궤도에 올랐다. 지난 9월 북한과의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2차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1-1 무승부를 기록했던 한국은 지난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 3-0 완승에 이어 UAE를 상대로 화끈한 경기력을 선보여 4-1로 대승, 월드컵 7회 연속 본선진출 희망을 밝게 했다. UAE전에서 가장 빛났던 점은 5분 사이에 2골을 몰아 넣은 ´집중력´이었다. 한국은 전반 20분 이청용(20, 서울)의 패스를 받은 이근호(23, 대구)가 선제골을 성공시켰고, 상승세를 이어가며 5분 뒤인 전반 25분 박지성(2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추가골을 성공,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따라붙은 수비의 마크를 이겨내고 골을 성공시킨 이근호와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감각적인 트래핑과 강력한 슛으로 마무리한 박지성 모두 개인의 능력을 득점까지 연결한데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경고누적으로 이번 경기에 결장한 김남일(31, 빗셀 고베)을 대신해 주장 데뷔전을 치른 박지성은 허정무호의 분위기를 일신한데 이어 UAE전에서 프리미어리거의 힘을 입증하는 듯한 멋진 골과 도움으로 한국축구의 기둥다운 모습을 선보였다. 지난 우즈벡전에서 2골을 폭발시키며 2008베이징올림픽 본선 부진의 아픔을 털어낸 이근호는 이날 전반 선제골에 이어 2-1로 UAE에 추격당하던 후반 35분 박지성의 패스를 받아 쐐기골을 성공시키는 등, 2골을 얻어내는 대활약으로 허정무호의 대표킬러로 자리매김했다. 사실상 일방적인 공격흐름에서 쉼없는 패스전개로 찬스를 만들어 갔던 선수들의 집중력 역시 칭찬받을만 했다. 이날 한국은 전후반 90분 내내 ´반코트´ 경기에 가까울 정도로 상대를 몰아붙이며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UAE는 부상과 경고누적, 자체징계 등으로 주전 5명이 결장했음에도 경기 초반 공격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전반 시작과 함께 강력한 압박으로 상대의 공격 의지를 꺾고 경기 주도권을 쥐었다. 지난 북한전에서 조심스러운 경기운영으로 낭패를 본 기억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듯한 플레이였다. 득점에 성공한 이근호, 박지성을 전방위로 지원한 공격진들의 활약도 합격점을 받았다. 북한전과 우즈벡전에서 연속골을 성공시키며 주가를 올렸던 기성용(19, 서울)은 UAE전에서도 세련된 플레이로 갈채를 받았다. 개인기를 이용한 돌파로 측면을 오가던 기성용은 후반 6분 맞은 찬스에서 UAE 골키퍼가 전진한 틈을 타 감각적인 오른발슛을 시도했다. 슛은 크로스바를 맞고 튀어나와 아쉬움을 남겼지만, 19살의 어린 선수에게서는 쉽사리 찾기 힘든 멋진 슛이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나선 정성훈은 이날 경기에서 전후반 내내 쉴새없이 뛰어다니며 UAE 수비진을 끌고 다녔고, 강력한 제공권을 바탕으로 한 헤딩슛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좌우 측면 풀백으로 나선 김동진(26, 제니트)과 이영표(31, 도르트문트)는 쉴새없는 오버래핑으로 공격흐름에 힘을 보탰다. 김동진은 코너킥 상황에서 적극적인 공격가담으로 잇따라 위협적인 헤딩슛을 연결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서 독일 분데스리가 이적 이후 회복된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이영표 역시 날카로운 크로스로 UAE 골문을 위협했다. ´허정무의 남자´ 곽태휘(27, 전남)는 오랜 부상을 털고 복귀한 A매치(국제경기)에서 한국의 승리를 확정짓는 멋진 헤딩골로 골폭풍의 대미를 장식했다. 후반전 교체투입된 김형범(24, 전북)은 K-리그에서 인정받았던 강력한 슛을 UAE전에서도 어김없이 발휘하며 UAE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그러나 후반 26분 순간의 방심으로 UAE에 어이없게 실점한 점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김동진의 패스를 받던 조용형(25, 제주)은 UAE 공격수 이스마일 알 하마디의 압박에 곽태휘(27, 전남)가 포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개인기를 시도하다가 공을 빼앗겼고, 이것이 그대로 실점으로 연결됐다. 앞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끝까지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펼쳐야 했던 중앙수비수의 실수는 UAE전 ´옥에 티´였다. 후반 7분 UAE 수비수 바시르 알 하마디의 악의적인 반칙으로 이청용이 부상을 당한 점도 아쉽다. 이날 선제골을 돕기도 했던 이청용은 알 하마디의 패스를 피하지 못하고 오른발 정강이를 채이며 발목이 꺾이는 큰 부상을 당했다. 그동안 한국의 오른쪽 측면 공격을 담당했던 이청용의 부재는 사우디와의 최종예선 3차전을 앞둔 허 감독에게 큰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