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진땀줄줄’첫이발실습

입력 2008-11-26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


얼마 전 다용도실에 가서 히터를 꺼내다가 지금은 쓰지 않는 낡은 이발기 하나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 이발기를 보니까 6년 전, 우리 애들 머리 잘라주던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결혼하기 전부터 미용에 관심이 많아서, 미용사가 되려고 자격증 공부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면서 잠시 그 꿈을 접게 됐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중소기업 살리기’ 제품 전시장에 들렀는데 거기서 이발기 설명하는 소리에 발길이 딱 멈춘 겁니다. 그래서 아무 망설임 없이 덜컥 이발기를 샀는데, 실습대상을 찾는 게 문제였습니다. 저는 두 아들을 향해 “엄마가 이발기 샀는데, 누가 먼저 머리 자를래?” 하고 외쳤습니다. 중학생 큰아들이 “엄마 난 아니에요. 내 머리는 생각도 하지 마세요” 하면서 손사래를 쳤습니다. 덩달아 8살 작은 아들도 “나도 아니에요. 형아 머리 안 자르면 나도 안 자를 거예요” 이러면서 두 녀석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겁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남편이 “그럼 내 머리부터 실습해봐”하면서 순순히 나섰습니다. 제가 놀라서 “정말? 자기 나한테 머리 맡겨도 괜찮겠어? 내가 망쳐도 후회 안 해?” 했더니 “망치면 빡빡 밀어버리면 되지 뭐∼” 하며 아무렇지 않게 허락했습니다. 저는 보자기를 펴서 남편 목에 두르고, 처음으로 이발을 시작해봤습니다. 서툴러 그런지 남편이 이따금씩 “앗 따가워! 아 뭐야? 왜 이렇게 따가워?” 하면서 머리를 자꾸 움직였습니다. 그 때마다 “가만히 있어봐 자기가 자꾸 움직이니까 머리가 이상해지잖아. 따가워도 좀 참아” 하면서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머리를 자르면 자를수록 뒷머리는 푹푹 들어가고, 옆머리는 들쭉날쭉하고, 남편 머리스타일이 자꾸만 이상해지는 겁니다. 남편도 불안했는지 “잠깐만 거울 좀 가지고 와봐” 하면서 자기 머리모양을 살펴보더니 “안 되겠다 그냥 다 밀어야겠다” 이러면서 그냥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는 겁니다. 남편은 금세 하얀 달덩이가 되었고, 그 머리를 감추기 위해 결국 모자를 쓰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제 열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작은 아들에게 “엄마가 아빠처럼은 안 잘라∼ 그냥 끝에만 살짝 자를 거야∼ 그리고 엄마가 과자도 사주고 용돈도 줄게∼” 하며 살살 달랬는데, 역시 어린애라 그런지 쉽게 넘어왔습니다. 얼른 작은아들 목에 보자기를 두르고, 한 손에는 과자를 쥐어주고, 또 한 손에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쥐어줬습니다.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작은아들의 머리를 잘랐는데, 생각보다 예쁘게 잘 나온 겁니다. 제가 봐도 잘 자른 것 같아서 이번엔 부담이 가는 중학생 아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어봤습니다. “아들∼ 여기 동생 머리 좀 봐봐∼ 이 정도면 잘 잘랐지? 너도 이렇게 끝만 살짝 다듬어 줄게. 엄마 한번만 잘라보자∼” 하고 설득을 했습니다. 하지만 큰아들은 무슨 소리냐며 말도 안 된다고 팔짝팔짝 뛰었습니다. 제가 용돈을 슬며시 쥐어주면서 “조금만 자를게∼” 했더니 “그럼 진짜 조금만 잘라야 돼요∼” 이러면서 제게 머리를 맡겼습니다. 저는 조심조심 큰애 머리를 잘라나갔고, 큰애는 불안했는지 인상을 팍 쓰고 거울로 제가 하는 걸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 자르고 나서는 “뭐 괜찮네요” 이러면서 합격점을 줬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일입니다. 왕 초보자인 제게 선선히 머리를 맡겨주고, 그 덕에 잠시나마 제가 미용사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줬으니 말입니다. 이제는 애들이 다 커서 큰애는 벌써 군대에 가고, 작은애는 중학생이 되었는데, 나중에 다 같이 모이면 그 때 얘기를 해봐야겠습니다. 다들 뭐라고 할까요? 그 생각하니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옵니다. 전북 익산 | 손승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