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작지만벌긴어려운돈2만원

입력 2008-11-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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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으면 날씨도 추워지고, 연료비도 많이 들게 됩니다. 통장에 잔고는 얼마 남지 않았고, 남편 회사도 경기가 안 좋아 연말 보너스도 없을 거라고 합니다. 저라도 한 푼 벌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생활정보지를 쭉 훑어봤습니다. 하지만 오십 줄 나이에 특별한 능력도 없는 아줌마에게 열려진 길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주방보조일’ 시급 4000 원에, 보통 4∼5시간을 일하니까 하루 2만원 정도 벌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고민 하다가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주방보조 구하신다케서 전화 드렸는데예. 사장님 사람 구했는교?” 했더니, “주방 일은 해 봤는교?”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인데예. 첨인데예” 하니까 “그라모 내 다시 연락 드릴게예” 하고 전화를 툭 끊어버렸습니다. 너무 간단명료하게 전화면접이 끝나버리자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속상했지만, 다른 식당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 중 한 식당에서 지금 나와 달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사장님은 제가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주방으로 안내하더니 뚱뚱한 아줌마께 저를 인사시켰습니다. 그 아줌마는 저를 위아래로 훑으면서 “아이고 그리 약해 가지고 설거지나 제대로 하겠는교. 어쨌든 일이 바쁘니께 이리 오이소. 저그 상추 보이지예? 저거 다듬어서 깨끗이 씻어 놓고, 이 부추도 흐트러지지 않게 가지런∼히 바구니에 담아 놓이소” 하면서 저를 식당 뒤 공터에 세워두었습니다. 맨손으로 상추 한 상자, 부추 한 상자를 쪼그리고 앉아 씻었습니다. 손은 부추의 매운 기운으로 벌겋게 변해서 근질근질 했고,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았더니 무릎관절이 찌릿찌릿하며 아팠습니다. 시키는 대로 채소들을 깨끗이 씻어 바구니에 담고 가져갔더니 “그라모 여 들어와서 설거지 해야제” 라고 했습니다. 싱크대를 봤는데, 산처럼 쌓여있는 그릇들이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하지만 이제와 그냥 갈 수도 없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큰 접시, 작은 접시, 물 잔, 음료수 잔을 씻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그릇들을 씻고, 정리했지만 홀에서 들어오는 설거지거리는 끝이 없었습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끝날 시간이 다됐고, 제가 “화장실 좀 갔다오끼예∼” 하며 고무장갑을 벗는데, 그 주방 아줌마가 양파 한 자루를 툭 던져주었습니다. “이것만 까놓고 가라.” 그걸 보는데 갑자기 속이 확 뒤집어지면서 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양파들을 하나하나 까서 통에 담아놓고, 화장실에 가자마자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그런 제 맘을 아신 건지 모르신 건지, 사장님께서 제게 커피 한 잔을 주시며, “아지매요 오늘 수고 많았으예. 아지매 손이 엄청 빠르던데, 담에 또 전화하며 나와주이소∼ 여기 이만원 오늘 일당입니더” 하고 노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그 봉투를 들고 집에 와서, 돈을 꺼내보지도 못하고 그냥 물끄러미 바라만 봤습니다. 참으로 겁 없이 돈 쓰던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마음 맞는 엄마들이랑 좋은데 찾아다니며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같이 운동하러 다니고, 화려했던 옛날 생각이 나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이만 원, 이만 원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하늘한번 못 쳐다보고 다섯 시간을 묵묵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 하지만 때로는 비싼 밥 한 끼에도 쉽게 없어질 수 있는 돈입니다. 옛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요즘처럼 살기 팍팍한 세상에, 그래도 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감사한 일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당 이만 원을 누런 봉투 채 가계부 사이에 소중히 끼워놓았습니다. 경북 구미 | 서순영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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