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音談패설]정재형의‘음악과삶’산책하다

입력 2009-05-05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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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집 음반 ‘프롬나드(Promenade), 느리게 걷다’를 발표한 정재형이 자신의 음악과 삶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제공 | 소니BMG


최근 독집 음반 ‘프롬나드(Promenade), 느리게 걷다’를 발표한 정재형. 사진제공 | 소니BMG

“정재형표음악장르는‘정재형’이죠”소품집‘프롬나드…’발표
정재형(37)은 경계가 불분명한 뮤지션이다. 출발은 누가 봐도 ‘확실한’ 대중가수인데 그 이후의 행보는 작곡과 영화음악이 주류를 이루었다. 대부분 클래식과 팝의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작품들이다. 일렉트로닉의 뼈대 위에 이것저것 실험적인 살점을 붙였지만 그 근저에는 고전의 뿌리가 단단히 뻗어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재형은 본시 ‘태생’이 클래식이다. 한양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이후 파리로 날아가 파리고등사범음악원에서 영화음악과 클래식 작곡 양대 부문 석사를 받았다. 이번에 낸 독집음반 ‘프롬나드(Promenade), 느리게 걷다’에서도 정재형 특유의 냄새는 강렬하기만 하다. 영화 ‘우리 집에 왜 왔니’에 사용된 음악을 재구성한 이 음반에서 정재형은 뒷짐을 진 채 유유히 음표 사이를 걷는다. 직접 만나보니 말도 느렸다. 그가 묵고 있는 중구 예장동의 한 호텔 회의실에서 녹음기를 마주 하고 앉았다. 대중음악이 아닌 클래식 담당 기자로서 묻고 싶은 게 많았다. ○클래식을 전공했는데, 음악적 전환을 하게 된 건 언제였지요? “대학 3학년 2학기 때 베이시스로 데뷔했지요. 학교에서 문제가 많았어요. 교수님들이 대책회의까지 여셨죠. 유재하 선배 같은 분이 계셨지만 재학 중에는 활동을 안 했거든요.” 정재형은 1995년 발라드를 앞세운 혼성그룹 베이시스로 가수 데뷔했다. 본인은 탐탁해 하지 않지만 그는 엄연한 ‘아이들 스타’ 출신이다. 베이시스는 ‘내가 날 버린 이유’,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등의 히트곡이 든 음반을 세 장 낸 후 해체됐다. ○‘클래식 작곡가’ 출신의 대중음악가라는 시선이 불편한 적은 없었나요? “있었죠. 2집을 냈는데도 사람들이 클래시컬한 느낌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이상하다. 난 분명히 가요를 쓰고 있는데 왜들 그러지?’했죠. 그래서 오히려 더 거꾸로 치달았던 것 같아요. 더 요란하게 머리를 염색하고, 옷도 그렇게 입고. 사춘기 소녀의 반발심 같은 거였죠.” ○원래 팝에도 조예가 있었나 보지요? “전혀요. 베이시스 멤버인 (김)아연이와 (김)연빈이(두 사람은 쌍둥이 자매다)는 원래 잘 아는 사이였어요. 그 친구들이 가수를 하겠다면서 ‘오빠가 곡을 써보면 어떻겠냐’했던 거죠. 한 1년 준비했어요. 주위 사람들한테 요즘 유행하는 음악 좀 달라고 해서 들었죠. 가요와 팝 레퍼토리를 시험공부하듯이 팠어요. 보이즈투맨, 토니블랙스톤부터 시작해서 정원형, 김광민까지. 원래 그쪽이 아니라 지금도 약해요. 70∼80년대 록과 재즈가 특히 취약하죠.” ○99년에 훌쩍 프랑스로 유학을 갔지요? “스물 아홉살이었죠. 굉장히 불안한 시기였어요. 과연 이런 식으로 해서 40, 50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뭔가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었지요.” 파리에 가서 영화음악을 2년간 공부했다. 그리고 눈이 떠졌다. 생각이 넓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고, 그래서 기뻤다. 영화음악을 끝내고 다시 클래식 작곡과에 편입했다. 음악적 논리가 물처럼 몸으로 스며들었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지요? 차이가 있나요? “프랑스 친구에게 ‘서울은 정말 지긋지긋해’라고 하니 그 친구는 ‘나는 파리가 지긋지긋해’하더군요. 하하! 한국에 있으면 뭔가 일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파리에 가면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지요. 다만 친구니 동료니 마음을 터놓고 지낼 사람이 없으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일장일단이 있는 거지요.” 작곡 관련 일은 주로 파리의 아파트에서 한다. 늦잠을 즐긴 뒤 낮 12시쯤 일어나 오후 4, 5시 정도까지 일을 한다. 아이디어는 주로 피아노 앞에서 얻는다. 한때는 무작정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결국 피아노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생각이 진공상태로 머무는 순간이 있다. 그때가 음악이 노크를 해 오는 때다. 콰콰콰∼쾅!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아직도 솔로지요? 솔로 생활이 창작과 관련이 있을까요? “긍정적이겠죠. 전 누구랑 같이 살지 못 하는 병적인 게 좀 있어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내 일상을 보는 건 싫어요. 꽤 이기적이죠?” ○성격이 까칠한 편인가요? “전혀요. 예전에 까다롭고, 까칠하고, 신경질적이라고 소문이 난 적이 있어요. 뭐 그럴 때가 아주 없진 않지만 … 저 그렇게 막 돼먹은 놈은 아니에요. 하하!” ○영화 속에서 정재형의 냄새가 나기를 원하나요? “무섭죠. 이번 작품(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는 정말 숨고 싶었어요. 음악을 영화 안에 숨기고 싶어요.” 정재형 음악을 말할 때 늘 거론되는 것이 장르의 문제이다. 이 진부한 논란에 대해 정재형은 지긋지긋해 했다. ‘내 안에서 장르의 구분이 꼭 있어야 하는가’라고 되물어 왔다. 애써 장르를 만들자면 ‘클래시컬 일렉트로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진부한 질문에 대해 애써 만들어 놓은 모범답안처럼 들렸다. ○결국 정재형 음악의 장르는 ‘정재형’이다 이것인가요? “감사합니다.” 영화음악에 가려져 있지만 그는 클래식 작곡가이기도 하다. 이미 3악장짜리 실내악 작품을 현악4중주단 MIK의 연주로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을 테마로 오케스트라 버전을 만들고 싶다. 교향곡 형식이면 좋겠지만 최소 6개월 이상은 걸릴 것 같아 고민 중이다. 20년 후 정재형 음악은 어디쯤 가 있을까. 되돌아온 답변은 명쾌했다. “20년 후에 또 뵙지요.”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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