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아침편지]‘S’자가꼬부랑‘8’자라고?울엄마재치만점영어실력

입력 2009-09-25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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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는 내년이면 연세가 여든이신데 부산에서 홀로 살고 계십니다. 엄마는 밖에 나가면 동네 할머니들과 얘기도 나누고 하면 금방 하루가 지나가니, 적적하지도 않고 아직까진 혼자 사는 것이 좋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엄마에게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밥을 하려고 하는데 압력밥솥에 문제가 생겼는지 밥이 잘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엄마는 “거기가 써비스 센타 맞습니꺼? 내 쓰던 압력밥솥이 고장이 났는데, 내 우찌해야 하는지 몰라가, 전화를 걸었는데 이걸 우짜지?”라고 했답니다. 센터 직원은 어떻게 고장이 났는지 설명을 부탁했고 엄마는 “이게 마, 밥솥 뚜껑이 헐거워져서 꼭 닫혀지질 않는데이. 고무패킹? 이기 이상한 것 같은데 우리 집에 좀 와서 고쳐줄 수 없나?”하고 물어봤죠.

센터직원은 “할매, 그게 고무패킹만 갈아뿌면 되는데 사람이 나가모 저희들이 출장비라카는걸 받아야 합니더. 그러지 마시고 밥솥뚜껑만 이리로 갖고 오이소. 출장비 안 받고 고쳐드립니더”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생각도 못한 답에 좀 당황 하셨는지 “출장비? 고무패킹 하나만 갈면 되는데, 무신 출장비꺼정 받고 그라노? 와서 좀 고쳐주면 안되노?”라고 했죠. 센터직원은 너무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어머니의 말투에 당황했는지 조금 머뭇거렸고, 그럼 똑같은 부품으로 보내드릴테니 제조번호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직원 말대로 제조번호를 찾으셨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글쎄 그 제조번호라는 것이 영어로 돼 있던 거죠.

“아이고, 이거 꼬부랑 글자 아이가? 내가 영어를 모르는데, 이를 우얄꼬?”하고 물었죠. 그러자 직원은 주변에 젊은 사람을 찾아서 물어보고 다시 연락 달라며 전화를 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잠깐! 쪼매만 기다려 보소, 사람이 와이리 급하노, 내 한번 불러볼끼다. 단디 들어라. 단디 들으면 알 수 있을끼다!”하고 직원을 붙잡았고, 직원은 허허 웃으며 한 번 불러보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잘 받아 적그라, 꺼꾸러 육!(P), 글고 이건, 위로 지렁이 같이 꼬부랑한게, 8자는 아인데, 아무튼 꼬부랑 하게 생겼다.(S)”

이렇게 직원은 용케도 엄마의 말을 알아들었고, 얼른 찾아서 보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엄마는 약속대로 고무패킹을 받으셨고, 그 이후로 맛있는 밥을 지어 드실 수 있으셨죠.

이제는 영어도 알아야겠다면서 어디서 배우셨는지 ABC정도는 쓸 수 있다며 자랑을 하십니다. 더불어 “너거들, 네 걱정은 하지들 말아라. 나는 내 혼자서도 잘 살테니, 너거나 잘 살그라!”하시면서 오늘도 독신을 고집하십니다. 어때요, 정말 저희 엄마 재치 있으시죠?

From. 임혜경|서울시 강동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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