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아침편지]이웃집할머니만나며자식된도리깨달았죠

입력 2009-09-24 07: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며칠 전 저희 집 2층에 할머니 한분이 새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남편은 몸도 좀 불편해 보이시는 할머니 걱정이 됐는지, 저보고 다녀와 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얼마 전 사둔 포도와 맛있게 끓인 청국장찌개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할머니는 “아이고, 고맙기도 하지.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젊은 양반들도 있네 그려”하시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셨죠.

그간 할머니께서는 어찌나 정이 그립고 사람을 그리워 하셨는지 제 손을 꼬옥 잡으시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 얘기 저 얘기 하셨습니다.

연세가 여든 여섯이나 되신 할머니께선 당뇨병과 함께 허리와 다리가 아프셔서 겨우 걸음을 걸으실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할머니는 35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사이에서 8남매를 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딸 하나와 아들 하나는 먼저 세상을 떴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6남매를 할머니 혼자 갖은 고생을 하시며 키우셨답니다.

그 소리에 저는 “어머, 혼자서 어떻게 6남매를 키우셨어요. 저는 우리 3남매 키우는 것도 힘든데. 할머니 대단하세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선 “말도 말어. 그래도 내 자식인데 어디 다른 사람 손에 맡길 수가 있남? 내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누구 하나 어디 안 보내고 내 손으로 다 키웠어. 그런데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시방 나를 봐. 몸도 아프고 이렇게 나이 들었는데, 돌봐주는 자식이 없어서 이러고 혼자 살잖여.”

한숨이 섞인 할머니의 말에 저는 안쓰러워 훌쩍거리기만 할 뿐 뭐라 드릴 말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따님들에겐 연락이 오지 않냐고 여쭤봤습니다. 그러자 “딸들도 연락이 뜸하지. 연락 온 지 백일도 넘은 것 같아. 이것들이 전화라도 자주 해주면 좀 좋아? 에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하지도 않나봐. 무정한 것들.” 당신의 처지가 서러웠는지 눈물을 흘리시며 얘기를 털어놓으시는 할머니가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순간 나는 어떤가 하고 돌아보니, 그 할머니 자식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저를 발견하고는 민망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시골에 혼자 사시는 엄마에게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도 자주 못 드리고, 명절 때도 거의 내려가질 못했거든요.

너무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던 저는 할머니 집에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친정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음 날, 친정엄마 생각이 난 저는 2층 할머니 댁에 또 갔습니다. 그리곤 제가 딸이 되어드리겠다며 잡숫고 싶으신 게 있으면 다 말씀하시라고 했죠. 매일은 못되더라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꼭 찾아뵙고, 친정에도 안부 전화를 걸려고 합니다. 두 어머니 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From. 김영희|서울시 금천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