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편지] 새로 산 승합차가 남편 아지트 될 줄은…

지난 여름 남편은 중형차를 처분하고 9인승 승합차를 구입했습니다. 저는 멀쩡한 차를 왜 바꾸나 싶어서 반대했습니다. 이 사람 하는 말이 처가 식구들 태우고 여행 좀 다니고 싶어서 그런다고 허락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뭐 남편이 나쁜 짓 하겠다는 것도 아니라서 승낙했습니다.

승합차를 산지 세 달이 넘는 지금 여행은 고사하고 통일전망대, 남한산성을 겨우 다녀온 정도입니다. 승합차만 있으면 자전거 싣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하더니, 안양천에 딱 한 번 갔다 왔습니다. 그 이후로 승합차는 주로 우리 집 주방 창문 바로 앞에 세워놓고는 잘 타지도 않는 겁니다. 지난 장마 때 비 오는 풍경을 구경하러 가자면서 애들을 데리고 나가더니 차 뒷문을 활짝 열어놓고, 네비게이션으로 TV를 보며 뻥튀기를 먹고 있더군요. 그 이후로는 그 승합차가 무슨 자기 아지트라도 되는지, 동네 친한 형님들을 불러서 새벽 한시까지 차 안에서 속닥거리면서 노는 겁니다.

다들 저희 집 승합차가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건지, 언제부턴가 동네 사랑방이 돼서는 이사람 저 사람 모여서 수다 떨기 바쁘더군요.

남편은 차 안에 작은 탁자까지 올려놨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심심한데 술 한 잔 씩 하자면서 바로 옆 슈퍼에서 술을 사오는 겁니다. 그럼 남편은 저한테 뭐라도 맡겨놓은 사람 마냥 “김치부침개∼”하고 소리칩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귀찮기도 하고, 누구 좋으라고 이걸 하나 싶어서 하기 싫지만 동네 분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으니 별 수 있나요. 김치부침개 노릇하게 부쳐드려야죠. 창문을 통해 대령을 해드리는데 이 남자 여기에 맛이 들렸는지, 걸핏하면 창문으로 뭐 달라 뭐 달라 하는데 귀찮아 죽겠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번데기 통조림을 사와서는 데워 먹는다고 “냄비 좀, 파 좀, 숟가락 좀”이랬습니다. 조만간 눈이 내리면 눈 구경 한다고 남편이 또 승합차로 사람들을 불러 모을 것 만 같네요.

박문형 ｜ 경기도 광명시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