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스포츠동아 DB
92년 야마구치·94년 바이울, 예술점수 앞세워 정상
큰무대 심리적 부담감에 고난도 점프 성공 확률 낮아
02년 휴즈·06년 아라카와 안정 연기로 피겨퀸 등극
올림픽의 역사는 김연아(20·고려대) 편이다.
피겨는 서커스가 아니다. 더 많은 회전수의 점프 역시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한 소절에서의 고음처리를 두고, 최고의 가수를 운운하지 않는 것과 같다. 특히, 신 채점에서는 기술마다 그 수행 정도를 두고 정해진 범위 안에서 점수를 주기 때문에 고난도 점프라고 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가산점을 받지 못한다. 안정적인 경기와 표현력 등은 더 중요해 졌다. 19일 열린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피겨 남자싱글에서 쿼드러플 점프를 펼치고도 은메달에 머문 예브게니 플루센코(28·러시아)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구 채점 제도 하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도 전통적으로 점프기술에 치중한 선수보다는 예술성이 우수한 선수들이 금메달과 인연을 맺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는 1992알베르빌동계올림픽. 당시 ‘미스 트리플악셀’로 통하던 이토 미도리(41·일본)였지만, 프리연기에서 2번의 트리플악셀을 시도 중 1번만을 성공시켰다. 반면 크리스티 야마구치(39·미국)는 트리플살코를 더블로 처리하는 실수를 범하고도, 예술 점수에서 이토를 크게 따돌렸다. 결국 금메달은 야마구치의 차지. 또 다른 트리플악셀러였던 토냐 하딩(40·미국) 역시 야마구치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야마구치는 김연아와 마찬가지로 트리플러츠-트리플토루프 컴비네이션과 섬세한 손 연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1994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발레와의 접목과 아름다운 도넛스핀으로 무장한 옥사나 바이울(33·우크라이나)은 점프 기술에서 앞선 낸시 캐리건(41·미국)을 꺾고 정상에 섰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심리적 부담이 큰 올림픽에서 클린(clean) 연기가 잘 나오지 않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역대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는 금메달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연기가 적었다. 올림픽에서는 의외의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06토리노올림픽에서는 이리나 슬루츠카야(31·러시아)와 샤샤 코헨(26·미국)이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지만, 막상 피겨여제의 영광은 아라카와 시즈카(29·일본)가 차지했다. 2002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에서도 실수를 범한 슬루츠카야와 미셸 콴(30·미국) 등을 따돌리고, 사라 휴즈(25·미국)가 정상에 섰다.
이 중에서도 점프에 치중한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자기 경기력의 최고를 발휘해야 성공할 수 있는 기술을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보여주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트리플 악셀에 집착하는 ‘라이벌’ 아사다 마오(20·일본)가 불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김연아는 성공가능성이 큰 기술요소들을 적절히 구성해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 왔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