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거지야?" 소리듣고 잘데 없던 신지애 아버지…

입력 2010-03-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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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환경에서도 자신을 뒷바라지해준 부모와 오빠. 최나연의 ‘빛나는 영광’은 바로 그들과 함께 겪은 아픔에 힘입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하나은행 코오롱챔피언십 우승 모습. [스포츠동아 DB]

신지애·최나연, 우린 아픈만큼 컸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G스타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리고 화려하다. 그러나 눈부실만큼 화려한 스타들이지만 이들 역시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오늘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한없이 길고 어두웠던 아픔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G세대 골프 스타 신지애와 최나연이 보낸 상처와 아픔의 시간들은 이들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족의 힘으로 일군 세계 정복

“네가 거지야? 너같이 똑똑하고 잘난 놈이 왜 나 같은 놈 붙들고 애걸을 하냐?”(책 ‘파이널 퀸 신지애, 골프로 비상하다’ 중)

돈 없이 골프를 시킨 신지애의 아버지 신제섭 씨는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딸의 골프를 중단하지 않았다. 가난한 시절, 골프는 유일한 희망의 끈이었다.

신지애는 골프를 시작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기로에 섰다. 15살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골프를 계속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이 돈은 엄마의 생명과 바꾼 돈이니까, 한 타 한 타 칠 때마다 신중하게 치길 바란다.”(위 책 중)

단돈 1700만원. 어머니를 보내고 남은 전 재산 1900만원 중 200만원을 뺀 나머지 돈을 아버지 신 씨는 딸의 골프훈련비로 썼다. 신지애는 더 이를 악물었다. 엄마의 생명과 맞바꾼 돈으로 꼭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가정은 거의 풍비박산됐다. 그나마 월세로 살던 집도 내놔 기거할 집마저 마땅치 않았다. 엄마와 함께 사고를 당했던 동생들이 입원한 병실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간이침대에 몸을 눕히면서 그렇게 골프를 계속했다. 그런 생활은 1년 넘게 계속됐지만 신지애는 힘든 내색도 없이 골프에만 전념했다. 아픈 과거를 딛고 일어선 신지애는 3년 뒤인 고교 2학년 때, 프로대회에 나가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이뤘다. 신지애의 비상이 비로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신지애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보고 싶었던 마음과 그동안 내색하지 않은 설움, 그리고 그 힘든 가운데 노력하며 목표를 이뤘다는 감격이 눈물 속에 담겨 있었다.


○“골프 때문에 미쳤구나!”


“저만 여관방에서 재우고 아빠는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는 모습을 보고 울컥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는 아빠가 왜 차에서 주무시는지 잘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집이 힘들어졌다는 걸 알았다”

최나연에게 감춰졌던 아픈 과거다. 골프를 가르쳤던 여느 가정처럼, 최나연의 부모도 ‘올인’을 택했다. 최나연의 부모는 친지와 친구들에게까지 “미쳤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딸의 뒷바라지를 멈추지 않았다. 오빠가 있었지만 부모는 오직 딸의 골프에만 매달렸다. 최나연은 “오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한다.

“오빠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모님이 저에게만 신경을 쓰면서 오빠는 부모님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다. 그래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어린 최나연의 어깨는 무거웠다. 골프로 성공하지 못하면 모든 게 산산조각이 되고 말 운명임을 잘 알고 있었다. 오빠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골프선수로 성공하는 것이었다.

“부담도 있었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더 이를 악물었다.”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최나연은 근성이 강하다.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다. 조금씩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되면서 차돌처럼 강해졌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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