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나고야로 휴가 갔을 때 기억입니다. 나고야 돔을 찾았는데 마침 전국사회인야구 결승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공짜로 들어가 야구를 봤는데 1회 주자가 출루하자 희생번트를 대더군요. 흔히 일본을 매뉴얼 사회라 부릅니다. 그 매뉴얼을 습득하면 아주 편하고, 그렇지 못하면 이상한 나라가 일본이라지요. 프로야구든 학생야구든 동호회야구든 1회 희생번트는 그들끼리의 매뉴얼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야구가 그 어느 스포츠보다 독특하고 처절하게 다가오는 순간은 희생번트나 스퀴즈번트를 목격할 때입니다.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내가 죽겠다’는 동양적 미(美)의식. ‘내가 잘돼야 전체가 잘 된다’는 서양식 개인주의 정서와 절묘한 대비를 이루죠.
#이런 미국과 일본의 관념차이를 일찍이 간파한 사람이 로버트 화이팅입니다. 그의 책 ‘베이스볼과 야구도(道)’는 총 406개의 항목을 들어 미국야구와 일본야구의 풍토차이를 증명합니다. ‘베이스볼은 플레이어라고 하지만 야구에서는 선수라고 한다.’ 즉 미국에서 스포츠맨이 ‘노는 사람’이라면 일본에서는 ‘선택된 사람’이란 뜻이 됩니다. 베이스볼이 플레이볼, 오락·유희의 개념으로 야구를 하고 본다면, 야구는 플레이워크, 즉 노동의 개념으로 야구를 하고 보는 셈이죠. 즐거움이 아니라 노동이니까 거기엔 고통의 인내가 필연적으로 따르고 윤리나 교훈 등이 요구되죠. 즉 인격연마 수단으로서 야구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야구에서 통용되는 ‘스리번트’, ‘관리야구’에 해당되는 용어가 베이스볼엔 없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한국야구는 베이스볼도 있고 야구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국제경쟁력, 혹은 흥행폭발의 원천이라 믿습니다. 야구의 훈련, 전술운용 방식이 여럿인 것처럼 야구를 보는 방식, 야구를 쓰는 방식도 다양한 법입니다. 기술적·통계적 면을 파고들 수 있고 스토리와 갈등을 서술할 수 있습니다. 야구의 유일 절대 진리가 있다면 ‘절대 진리는 없다’는 것 아닐까요. 자기만이 옳다는 독선, 비판을 용납 못하는 획일성이야말로 야구의 적(敵)이자 열린사회의 적(敵)입니다.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