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 라이프 스토리 ⑬ 김보경] 스물 한 살 황금 왼발을 키운 건 ‘허정무와 자라즙’

입력 2010-06-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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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의 막내 김보경은 제2의 박지성을 꿈꾸며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그가 써내려갈 월드컵의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스포츠동아DB

중학생 작은 키·왜소한 체격 고민
부모님 자라즙 등 보양식 뒷바라지

“멀티플레이어 보경, 키 걱정 말라”
허정무 축구센터장 한마디 힘 불끈


‘왼발의 달인’ 김보경(21·오이타 트리니타)이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주변에선 의외의 발탁이라는 평가도 있다. 박지성, 염기훈 등 팀 내에서 경쟁해야 할 상대도 버겁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에 이어 월드컵 대표로 발탁되기까지 그는 겁 없이 달려왔다. 허정무 감독은 김보경에 대한 믿음으로 그를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포함시켰다. 4년 뒤에 그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보경의 발탁은 미래 한국축구를 위한 듬직한 보험이다.

허정무 감독 “보경아 잘했어!” 2월 14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0 동아시아축구선권대회 한국 대 일본의 경기에서 교체돼 벤치로 들어오던 김보경(오른쪽)이 허정무 감독의 격려를 받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태권소년에서 축구꿈나무로

김보경은 축구를 하기 전 태권도를 배웠다. 소질도 있었다. 태권도를 한지 1년도 되지 않아 시범단원으로 선발됐다. 운동신경 하나만은 타고난 듯 하다. 그러나 축구에 푹 빠져 있던 김보경은 태권도 대신 축구를 선택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태권도를 시작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두각을 보였죠. 그러면서 미국의 6개 주를 돌며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단원으로 선발됐는데, 보경이가 가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는 축구가 더 좋으니 그냥 축구를 하겠다는 게 이유였어요.”

태권도를 가르쳤던 사범은 김보경의 재능이 아까웠다. 그래서 몇 번이나 설득하려 했지만 끝내는 축구를 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못했다.

“사범님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보경이의 모습을 보고나서 ‘제가 포기하겠습니다’라고 말하시더라고요.”

김보경이 축구를 시작한 건 오류초등학교 3학년 때다. 동네에서 아이들과 공을 차며 놀던 것을 당시 감독이 눈여겨보고는 집으로 몇 번을 찾아와 축구선수를 시키라고 권유했다. “체격이 작아서 운동을 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감독님이 보경이를 설득했는지 본인이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애가 하고 싶다고 하니까 시키게 됐죠.”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아들의 축구실력은 몰라보게 성장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서울시 대표로 발탁되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 장어랑 자라먹고 무럭무럭

“키가 작아서 축구를 계속시켜야 할 것인지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중학교 때까지 김보경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작았다.

160cm를 갓 넘었으니 축구 선수로서는 체격이 왜소했다. 부모로서 조바심도 생겼다. 부친 김상호(54) 씨는 서울 개봉동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기에 남들처럼은 아니었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주고 싶었다.

“키가 작아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키 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건 뭐든 다 해먹였어요. 장어와 자라는 즙을 내서 엄청 먹였죠. 그 덕분인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훌쩍 키가 크더라고요.”

키 때문에 축구를 그만둘까 하는 고민도 많이 했다. “어렵게 테스트를 통해 용인 축구센터에 선발이 됐죠. 하지만 전국에서 몰려온 아이들 틈에서 보경이에게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어요. 게다가 발목과 무릎에 부상까지 당했던 터라 2학년 6월까지는 벤치만 지켰거든요.”

고민하던 김 씨에게 당시 축구센터를 이끌던 허정무 감독은 “보경이는 어느 포지션을 봐도 잘 해낼 실력이 있는 선수다. 누구나 170cm 정도는 클 수 있으니 키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힘을 실어줬다.

● 일찍 찾아온 벤치의 설움

고교 진학을 앞두고도 ‘축구를 그만둘까’하는 고민을 했다. 이때도 중학교에서 지도를 맡았던 정광석 감독(현 용인시청 감독)이 김보경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다른 학교로 진학시키자고 했다.

“감독님이 ‘욕을 먹어도 내가 먹을 테니 보경이를 맡겨 달라’고 했어요. 감독님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 거절할 수 없더라고요.”

남보다 일찍 아픔을 겪었던 덕인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신갈고와 홍익대를 거치면서 팀에 수많은 우승컵을 안기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뛰어난 왼발 킥과 볼 키핑력은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김보경의 진가는 U-19와 U-20 대표로 발탁되면서 더욱 빛이 났고, 마침내 21살의 나이로 월드컵 대표로 발탁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실제 경기 중 결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선수다”며 허정무 감독은 김보경의 발탁 이유를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능력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다. 부친 김 씨는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누구보다 자기관리가 뛰어나거든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하면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믿어요”라고 말했다.

● 넘치는 ‘끼’, 여자친구는 아직

김보경은 숨겨 둔 재주가 많다.

2009년 8월.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로 나선 김보경은 16강 진출이 결정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선취골을 성공시킨 뒤 바이올린을 켜는 듯한 세리머니를 펼쳤다. 골도 골이었지만 이 독특한 세리머니는 팬들의 뇌리에 고스란히 박혀 화제가 됐다.

어린시절 김보경은 춤꾼이었다. 동네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서는 자기가 직접 개발한 춤을 선보이면서 가르치곤 했다. 김 씨는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서는 자기가 개발한 춤을 가르쳐 주고 가장 잘 따라한 아이에게 순위를 정해주더라고요. 저런 재주도 있었나 했죠”라며 웃었다.

김보경은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김 씨는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지만 아들은 아직까지 축구를 더 좋아한다. 언젠가는 ‘여자친구도 사귀어 보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나중에 성공하고 나서 사귀어도 늦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라고 하더라고요.”



● ‘왼발의 달인’ 김보경 성장앨범

1. 아기 때 김보경. 유별난 축구공 사랑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2, 김보경이 서울시 교육감배 축구대회(2000년)에서 상대선수와 몸싸움을 하고 있다.
3. 서울시 남녀종별 축구선수권대회(2001년)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고 있는 김보경.
4. 지난 2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컵 국제청소년 축구대회 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개막전에서 두 번째 골을 터트린 김보경이 세레모니를 펼치고 있다.

● 김보경 프로필

생년월일= 1989년 10월6일
출생= 서울
신체= 178cm, 73kg
소속팀= 오사카 세레소(2009년), 오이타 트리니타(2010∼)
포지션= 미드필더
출신학교= 서울 오류초-용인 원삼중-신갈고-홍익대
데뷔= 2010년 1월9일
경력= U-19 대표팀(2008년), U-20 대표팀(2009년)
A매치 출장= 6경기
월드컵 출전 경험= 없음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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