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종가 영국에서 왔지만, 야구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그들. 데이미언 윌시(위·왼쪽)와 사이먼 그린(위·오른쪽)씨.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 온 마이크 라인하트(아래·오른쪽) 씨는 한국야구의 색다른 분위기에 매료됐다. 한국의 야구열기 속에서 그들은 모두 하나가 됐다.
야구장의 외국인들
영국에서 날아온 그린·윌시 씨가족적 분위기·예쁜 여성팬 등
EPL과 다른 응원문화에 매료
ML팬 라인하트, 긴장감 매력
“정확도·파워 겸비 김현수 광팬”프로야구는 이제 600만 관중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아버지·어머니의 손을 꼭 잡은 어린이 팬, 다정하게 팔짱을 낀 연인들, 회사동료들과 어깨동무를 한 팬들까지. 이제 8개 구단의 어느 홈구장에서 손쉽게 다양해진 팬 층을 확인할 수 있다. 더 이상 우리만의 프로야구도 아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한국프로야구의 매력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세계각지에서 날아와 한국을 제 2의 고향으로 생활하고 있는 이들. 외국인들은 과연 무슨 이유로 한국야구를 사랑할까? 그리고 그들이 보는 한국야구는 어떤 빛깔일까? 30일 롯데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PO) 2차전이 열린 잠실구장에서 외국인 팬들을 만나봤다.
○맨유 광팬, ‘싸움 잦은 프리미어리그 비해 한국 야구장은 평화로워’
영국 맨체스터가 고향인 사이먼 그린 씨는 전형적인 ‘홈타운 보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라면 ‘인생을 거는’그 지역 축구팬 중 하나. 영국에서 축구에 대한 인기와 관심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국 일간지 더 타임스에 따르면, 영국 축구팬 중 10%가 자신의 팀을 응원하기 위해 취직이나 이직을 포기한 적이 있을 정도다.
팬들은 뜨겁다 못해 광적인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월드컵 시즌만 되면, 경계의 대상인 ‘훌리건’의 원조도 영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 씨는 “솔직히 한국 팬들 모습에 반했다. 그들의 열정적인 응원 모습에 감명 받았다. 맨유 팬들의 응원은 한국프로야구 팬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가장 큰 차이는 응원 분위기다. 그린 씨는 “프리미어리그 경기는 남자들이 전부다. 여성 팬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 팬들은 다양하다. 가족적인 분위기, 그리고 예쁜 여성 팬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싸움도 별로 나지도 않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다”라며 웃었다.
○축구종가에서 날아 온 야구팬, ‘야구매력 빠져 아직도 야구 배워요.’
사실 축구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은 ‘배타적’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 유럽의 축구강호들과는 또 다르다. 이들 나라들이 농구와 같은 다른 구기종목에서도 국제경쟁력을 갖춘 반면, 영국은 오로지 축구 하나에 ‘올인’한다. 영국 글로스터 출신의 데이미언 윌시 씨도 “나도 솔직히 한국에 오기 전까지 야구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의 발길을 야구장으로 돌리게 하는 것은 ‘일사불란한 응원문화’다. 윌시 씨는 “우연히 야구장을 찾았다가 현장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에 반했다. 이곳에서 마음껏 소리 지르며 응원하면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 물론 치어리더 언니(sister)들을 따라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거리 중 하나다”라고 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팀별·선수별 응원가 등은 있지만, 서포터스의 자발적인 응원형태가 주류. 반면, 한국프로야구는 조직적인 응원으로 효과를 극대화 시킨다. 하지만 응원만으로 야구의 매력을 다 알 수는 없다. 복잡한 야구규칙은 여전히 공부대상. 윌시 씨는 “아직도 야구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온 메이저리그 팬 ‘나는 정확도와 파워를 겸비한 김현수가 좋다’
외국인 팬 중에는 ‘야구 초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야구의 본고장에서 온 ‘고수’들도 눈에 띈다.
미국 노스 다코타 출신인 마이크 라인하트 씨는 “미국에서도 메이저리그 경기장을 자주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양국의 야구장 분위기는 확실히 다르다”고 설명한다.
야구는 ‘풀림과 조임’이 있는 경기다. 때로는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듣는다. 그러나 라인하트 씨는 “야구가 조금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야구는 다르다”고 말한다. 플레이오프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매 순간 짧게 잘라서 승부를 거는 문화를 얘기하는 듯 했다. 그는 “여기는 쉴 틈이 없다. 긴장감을 항상 느낄 수 있는 경기들이 아주 매력적이다.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꽤 집중하면서 경기를 봐야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수준 높은 경기를 많이 본 까닭에 선수를 보는 눈도 남다르다. 라인하트 씨는 “김현수를 (한국선수 중)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안타도 잘 치는 것 같고 파워도 겸비한 선수인 것 같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준PO 1·2차전에서는 부진했던 김현수. 두산 골수팬 뿐만 아니라, 외국인 팬까지도 그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다.
대니얼 김 Special Contributor
OB 베어스 원년 어린이 회원으로 어릴 적부터 야구에 미쳤다. 85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뒤 뉴욕 메츠직원을 거쳐 김병현과 서재응의 미디어 에이전트코디네이터로그들과 영욕을 함께 했다. (twitter.com/danielkim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