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일 때는 ‘우등생’이었다가 고등학교에 진학 후 갑자기 ‘열등생’이 되는 학생이 종종 있다. 이는 특히, 외국어고나 과학고와 같은 특수 목적고에 진학을 하는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 학생이 실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워낙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은데다가 낯선 환경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해 자신의 재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벤큐(BenQ)의 한국 지사인 벤큐코리아가 바로 이런 상황이다. 밴큐는 대만의 대표적인 IT기업으로, 모니터, 프로젝터,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등 광범위한 IT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유수의 LCD 패널 생산 업체인 ‘AOU’ 등 20여 개의 자회사를 가진 글로벌 그룹이기도 하다. 제품 판매량도 상당해서, 2009년 세계 DLP 프로젝터 시장에서 판매율 1위를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잘 나가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활약에 비해 한국 시장에서 벤큐의 활약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IT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벤큐라는 기업이 있다는 것을 아는 소비자가 드물 정도이니 말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거대 토종 IT기업들의 입김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이 틈을 벤큐코리아가 파고들기에는 힘이 부쳤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큐코리아는 ‘2011년은 다를 것’ 이라고 말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예고하고 있다. IT동아는 2010년의 마무리 즈음에 벤큐코리아의 대표인 최종성 지사장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벤큐의 한국시장 공략 의지를 확인해 보았다.
IT사업과 무관했던 대만 유학생
최 지사장은 한때 건설업에 종사한 적도 있을 정도로 IT사업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중국어 실력 및 인맥 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현재의 자리에 올랐다고 회고했다.
“저는 외국어대 중국어과 출신으로, 대만에서 공부를 하면서 현지 업계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게 대만 기업들의 마인드를 분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죠. 그 와중에 대만 IT 매체의 한국 특파원 친구가 에이서(Acer) 한국 지사의 취재를 하면서 그 곳에 중국어 구사 능력을 제대로 갖춘 직원이 드물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할 인력으로서 저를 소개해 주었지요.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IT업계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벌써 8년 전의 일이군요.”
에이서는 대만을 대표하는 대기업 중 한 곳으로, 벤큐도 본래는 에이서 그룹의 브랜드 중 하나였으나 2001년 독립 기업으로 분리됐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벤큐의 한국 지사 설립이 논의됐고, 그 대표로 최 지사장이 선임된 것이다.
프로젝터와 모니터에만 집중하는 이유
벤큐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상당히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벤큐코리아도 본사의 장점을 활용하여 설립 초기에는 디지털카메라, 키보드, 마우스, 공CD 등을 한국에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현재, 벤큐코리아는 프로젝터와 모니터만 취급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최 지사장이 설명했다.
“이는 순전히 선택과 집중의 문제였습니다. 단순히 사업 범위(coverage)를 넓히는 것 보다는 한 분야라도 1등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 성과로 재작년 벤큐는 한국 전체 프로젝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고, 특히 DLP 프로젝터 시장에서는 지금도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벤큐는 해외에서 넷북이나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 쪽에서도 상당히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벤큐의 모바일 관련 제품을 한국에서 만날 기회는 앞으로도 없는 것일까?
“사실 한참 넷북(미니 노트북)이 인기를 끌던 2년 전에 한국 시장에 벤큐 노트북을 들여오는 것은 어떨까 심각하게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관련 인력도 모집하고, 8개월 정도 꼼꼼히 시장 분석도 했지요. 하지만 넷북 열풍이 생각보다 빨리 사그러들면서 시장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만 두었습니다. 많이 아쉬웠죠.”
한국 프로젝터 시장 공략을 위한 노력
프로젝터는 크게 LCD 방식과 DLP 방식으로 나뉜다. LCD 방식은 광량이 높기 때문에 넓은 장소에서 큰 화면을 투사하기에 유리하며, DLP 방식은 화면의 선명도가 높아 홈시어터에 적합한 제품이다. 벤큐의 경우 DLP 프로젝터에 집중하기 때문에 기업이나 공공기관 납품 등에 있어서는 불리할 수도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물었다.
“LCD 프로젝터의 경우, 밝기가 최대 1만 안시에 달하기 때문에 확실히 넓은 공간에서 활용하기에 적합합니다. 하지만 LCD 프로젝터는 사용 시간이 길어지면 열화현상이 발생하지요. 하지만 DLP 프로젝터는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때문에 최근 시장 수요가 DLP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지요. 그리고 벤큐의 제품은 DLP 방식임에도 밝기가 6천 안시에 육박하는 모델도 있기 때문에 중간 규모의 강당에서 사용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 국방부, 병무청 등의 많은 기관에서 벤큐의 DLP 프로젝터를 선택해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벤큐가 제품의 품질에 자신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외국 기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한국 시장 공략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최 지사장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초기 제품에는 OSD(화면 조정) 메뉴가 한글화가 되어있지 않아서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었습니다. 저희는 이 문제를 본사에 건의했고, 이후부터는 한글 OSD를 집어넣게 되었지요. 그리고 한국의 학교나 기업에서는 다수의 프로젝터를 일괄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기능에 대한 요청이 많았는데, 이를 받아들여 랜(LAN) 네트워크를 통해 각 제품의 상태 체크와 조작이 가능한 크레스트론(Crestron) 기능을 갖춘 제품을 본격 공급하기 시작했지요. 물론 소비자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습니다.”
모니터 시장,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사이에서
벤큐코리아가 프로젝터 시장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모니터 시장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모니터 시장은 프로젝터 시장에 비해 소비자 지향적이므로 브랜드 인지도가 제품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국내 모니터 시장에서 부동의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비해 벤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 지사장도 이에 대한 대응책을 짜기 위해 고민이 많은 듯했다.
“국내 모니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내 모니터 시장은 브랜드의 힘으로 고급화 전략을 펴고 있는 두 대기업과 낮은 가격으로 승부하는 중소 기업들로 양분화가 되어있어요. 벤큐는 정확히 그 중간에 서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품의 품질은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뒤지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가격은 중소 기업들보다 약간 비싼 수준으로 책정해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사이에서의 경계선은 달리 말하면 그 어디에도 확실히 속하지 않는 모호한 위치다. 때문에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벤큐코리아의 대응 방안은 무엇일까?
“단순히 가격 정책만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저희도 인정합니다. 때문에 저희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철저하게 분석해서 특정 소비자층에 최적화된 제품을 많이 내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년 까지는 1년에 10개 정도의 모델을 내놓았지만 올해부터는 20개 정도로 늘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각 모델은 각 특정 소비자층에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기능과 성능을 갖추고 있지요.”
최 지사장은 특히 최근에 내놓은 신제품 모니터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했다. 그는 이번 신제품으로 인해 벤큐의 기술력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얼마 전에 내놓은 LED 모니터인 ‘VW’ 시리즈와 ‘EW’시리즈는 세계 최초로 VA 광시야각 패널과 LED 백라이트를 갖춘 고화질 지향 모니터입니다. 우수한 화질뿐 아니라 다양한 포토도 갖추고 있어 멀티미디어 매니아들에게 최적화됐죠, 이런 제품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출시될 예정이니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제품이 아무리 특정 소비자층을 만족시키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를 알리는 마케팅이 따르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벤큐코리아는 특정 소비자층 공략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최 지사장은 강조했다.
“예를 들면 게이머들을 위해 최적화한 모니터를 홍보하기 위해 이번 지스타 2010에 40대에 달하는 제품을 후원한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예전에 벤큐 프로게임 팀을 만든 적도 있고, 기존 프로 게임팀이나 게임 타이틀 자체를 후원한 적도 있습니다. 다만 ‘헬게이트 런던’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야심차게 후원을 했습니다만, 게임 자체가 큰 인기를 끌지 못해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계속되면 벤큐의 인지도 상승뿐 아니라 한국 게임 산업 발전에도 이바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언젠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만치 않은 한국 시장 공략, 눈높이 전략으로 돌파
해외 기업의 한국 지사 중에는 단순히 제품의 유통만 하는 ‘총판’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벤큐코리아 역시 이러한 선입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최 지사장은 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벤큐코리아는 제품의 단순 유통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니라 벤큐 본사의 글로벌 마케팅에도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온라인 마케팅, 특히 블로그나 SNS 마케팅의 경우에는 벤큐코리아가 처음 시작해서 그 노하우를 벤큐 본사에 전해주었지요. 게임 대회나 게임 팀을 후원해서 홍보효과를 얻는 마케팅도 벤큐코리아가 벤큐 본사에 전해준 방식입니다.”
이러한 벤큐코리아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해외 기업의 자회사라는 점 때문에 처하게 되는 한계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 최 지사장은 담담하게 언급했다.
“한국은 PC방 시장이 상당히 큽니다. 국내 PC방에 공급되는 모니터는 전면에 강화유리 장착이 필수인데, 벤큐의 모니터는 수입 완제품이기 때문에 강화유리가 없지요. 때문에 한동안 PC방 시장에 벤큐 모니터를 공급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입된 제품에 직접 강화유리를 다는 작업을 거친 후 PC방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또한 TV 수신 기능을 갖춘 모니터를 원하는 국내 소비자들이 상당히 많은데, 일반 모니터와 달리 TV 수신용 튜너가 달린 모니터는 8%의 관세를 물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국산 제품들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어서 벤큐코리아가 손을 못 대고 있지요. 참으로 아쉽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벤큐는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빠르게 출시함으로써 극복하고 있다고 한다. 최 지사장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 가며 설명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소비자들은 품질에 대한 요구 수준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때문에 벤큐코리아는 차별화된 기술력에 기반한 제품을 한 발 먼저 내놓고 있지요. 예를 들면 15ms, 8ms, 5ms, 2ms 등의 응답속도를 갖춘 모니터는 벤큐가 처음으로 내놓았습니다. 24인치 LCD 모니터의 출시 역시 벤큐가 가장 빨랐습니다. 그리고 국내에 HDMI 포트를 갖춘 모니터를 가장 빨리 내놓은 업체 중 하나가 바로 벤큐코리아였다는 것을 기억해주시는 소비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한국 소비자들은 제품 자체뿐만 아니라 사후 서비스 면에서도 눈높이가 높다. 최 지사장은 위와 같은 점도 잘 알고 있다며 대응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 소비자들은 대기업 수준의 서비스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지요. 때문에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거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고, 벤큐코리아도 실시하고 있는 무결점 보장이나 방문 서비스, 그리고 수리 시 대체 제품 대여 서비스 등은 사실 한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서비스입니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저희는 벤큐가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여러 나라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위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요.”
BenQ: Bringing Enjoyment ‘N’ Quality to Life
인터뷰를 마치며, 최종성 벤큐코리아 지사장은 IT동아의 독자들과 소비자들에게 인사말을 남겼다.
“전 그다지 사업 수완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만은 알고 있고, 이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지금까지 사업을 이끌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벤큐코리아는 항상 생활 속에서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벤큐(BenQ: Bringing Enjoyment ‘N’ Quality to Life)’라는 브랜드의 뜻이 바로 그러한 지향점을 내포하고 있지요. 고객님들도 이를 이해하시고 신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장 규모에 비해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고, 소비자들의 입맛도 까다로운 편인 한국 시장에서 외국계 기업들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번 인터뷰에서 알 수 있었다. 최 지사장이 인터뷰 내내 강조한 점은 글로벌 기업 벤큐의 기술과 저력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것, 그리고 한국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IT 기업 벤큐의 이미지를 한국에 심기 위해 힘쓰고 있는 최 지사장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길 바랄 뿐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 포털 내 배포되는 기사는 사진과 기사 내용이 맞지 않을 수 있으며,
온전한 기사는 IT동아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용자 중심의 IT저널 - IT동아 바로가기(http://it.donga.com)
벤큐(BenQ)의 한국 지사인 벤큐코리아가 바로 이런 상황이다. 밴큐는 대만의 대표적인 IT기업으로, 모니터, 프로젝터,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등 광범위한 IT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유수의 LCD 패널 생산 업체인 ‘AOU’ 등 20여 개의 자회사를 가진 글로벌 그룹이기도 하다. 제품 판매량도 상당해서, 2009년 세계 DLP 프로젝터 시장에서 판매율 1위를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잘 나가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활약에 비해 한국 시장에서 벤큐의 활약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IT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벤큐라는 기업이 있다는 것을 아는 소비자가 드물 정도이니 말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거대 토종 IT기업들의 입김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이 틈을 벤큐코리아가 파고들기에는 힘이 부쳤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큐코리아는 ‘2011년은 다를 것’ 이라고 말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예고하고 있다. IT동아는 2010년의 마무리 즈음에 벤큐코리아의 대표인 최종성 지사장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벤큐의 한국시장 공략 의지를 확인해 보았다.
IT사업과 무관했던 대만 유학생
최 지사장은 한때 건설업에 종사한 적도 있을 정도로 IT사업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중국어 실력 및 인맥 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현재의 자리에 올랐다고 회고했다.
“저는 외국어대 중국어과 출신으로, 대만에서 공부를 하면서 현지 업계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게 대만 기업들의 마인드를 분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죠. 그 와중에 대만 IT 매체의 한국 특파원 친구가 에이서(Acer) 한국 지사의 취재를 하면서 그 곳에 중국어 구사 능력을 제대로 갖춘 직원이 드물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할 인력으로서 저를 소개해 주었지요.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IT업계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벌써 8년 전의 일이군요.”
에이서는 대만을 대표하는 대기업 중 한 곳으로, 벤큐도 본래는 에이서 그룹의 브랜드 중 하나였으나 2001년 독립 기업으로 분리됐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벤큐의 한국 지사 설립이 논의됐고, 그 대표로 최 지사장이 선임된 것이다.
프로젝터와 모니터에만 집중하는 이유
벤큐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상당히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벤큐코리아도 본사의 장점을 활용하여 설립 초기에는 디지털카메라, 키보드, 마우스, 공CD 등을 한국에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현재, 벤큐코리아는 프로젝터와 모니터만 취급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최 지사장이 설명했다.
“이는 순전히 선택과 집중의 문제였습니다. 단순히 사업 범위(coverage)를 넓히는 것 보다는 한 분야라도 1등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 성과로 재작년 벤큐는 한국 전체 프로젝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고, 특히 DLP 프로젝터 시장에서는 지금도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벤큐는 해외에서 넷북이나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 쪽에서도 상당히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벤큐의 모바일 관련 제품을 한국에서 만날 기회는 앞으로도 없는 것일까?
“사실 한참 넷북(미니 노트북)이 인기를 끌던 2년 전에 한국 시장에 벤큐 노트북을 들여오는 것은 어떨까 심각하게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관련 인력도 모집하고, 8개월 정도 꼼꼼히 시장 분석도 했지요. 하지만 넷북 열풍이 생각보다 빨리 사그러들면서 시장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만 두었습니다. 많이 아쉬웠죠.”
한국 프로젝터 시장 공략을 위한 노력
프로젝터는 크게 LCD 방식과 DLP 방식으로 나뉜다. LCD 방식은 광량이 높기 때문에 넓은 장소에서 큰 화면을 투사하기에 유리하며, DLP 방식은 화면의 선명도가 높아 홈시어터에 적합한 제품이다. 벤큐의 경우 DLP 프로젝터에 집중하기 때문에 기업이나 공공기관 납품 등에 있어서는 불리할 수도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물었다.
“LCD 프로젝터의 경우, 밝기가 최대 1만 안시에 달하기 때문에 확실히 넓은 공간에서 활용하기에 적합합니다. 하지만 LCD 프로젝터는 사용 시간이 길어지면 열화현상이 발생하지요. 하지만 DLP 프로젝터는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때문에 최근 시장 수요가 DLP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지요. 그리고 벤큐의 제품은 DLP 방식임에도 밝기가 6천 안시에 육박하는 모델도 있기 때문에 중간 규모의 강당에서 사용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 국방부, 병무청 등의 많은 기관에서 벤큐의 DLP 프로젝터를 선택해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벤큐가 제품의 품질에 자신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외국 기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한국 시장 공략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최 지사장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초기 제품에는 OSD(화면 조정) 메뉴가 한글화가 되어있지 않아서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었습니다. 저희는 이 문제를 본사에 건의했고, 이후부터는 한글 OSD를 집어넣게 되었지요. 그리고 한국의 학교나 기업에서는 다수의 프로젝터를 일괄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기능에 대한 요청이 많았는데, 이를 받아들여 랜(LAN) 네트워크를 통해 각 제품의 상태 체크와 조작이 가능한 크레스트론(Crestron) 기능을 갖춘 제품을 본격 공급하기 시작했지요. 물론 소비자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습니다.”
모니터 시장,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사이에서
벤큐코리아가 프로젝터 시장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모니터 시장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모니터 시장은 프로젝터 시장에 비해 소비자 지향적이므로 브랜드 인지도가 제품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국내 모니터 시장에서 부동의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비해 벤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 지사장도 이에 대한 대응책을 짜기 위해 고민이 많은 듯했다.
“국내 모니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내 모니터 시장은 브랜드의 힘으로 고급화 전략을 펴고 있는 두 대기업과 낮은 가격으로 승부하는 중소 기업들로 양분화가 되어있어요. 벤큐는 정확히 그 중간에 서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품의 품질은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뒤지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가격은 중소 기업들보다 약간 비싼 수준으로 책정해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사이에서의 경계선은 달리 말하면 그 어디에도 확실히 속하지 않는 모호한 위치다. 때문에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벤큐코리아의 대응 방안은 무엇일까?
“단순히 가격 정책만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저희도 인정합니다. 때문에 저희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철저하게 분석해서 특정 소비자층에 최적화된 제품을 많이 내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년 까지는 1년에 10개 정도의 모델을 내놓았지만 올해부터는 20개 정도로 늘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각 모델은 각 특정 소비자층에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기능과 성능을 갖추고 있지요.”
최 지사장은 특히 최근에 내놓은 신제품 모니터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했다. 그는 이번 신제품으로 인해 벤큐의 기술력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얼마 전에 내놓은 LED 모니터인 ‘VW’ 시리즈와 ‘EW’시리즈는 세계 최초로 VA 광시야각 패널과 LED 백라이트를 갖춘 고화질 지향 모니터입니다. 우수한 화질뿐 아니라 다양한 포토도 갖추고 있어 멀티미디어 매니아들에게 최적화됐죠, 이런 제품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출시될 예정이니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제품이 아무리 특정 소비자층을 만족시키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를 알리는 마케팅이 따르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벤큐코리아는 특정 소비자층 공략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최 지사장은 강조했다.
“예를 들면 게이머들을 위해 최적화한 모니터를 홍보하기 위해 이번 지스타 2010에 40대에 달하는 제품을 후원한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예전에 벤큐 프로게임 팀을 만든 적도 있고, 기존 프로 게임팀이나 게임 타이틀 자체를 후원한 적도 있습니다. 다만 ‘헬게이트 런던’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야심차게 후원을 했습니다만, 게임 자체가 큰 인기를 끌지 못해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계속되면 벤큐의 인지도 상승뿐 아니라 한국 게임 산업 발전에도 이바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언젠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만치 않은 한국 시장 공략, 눈높이 전략으로 돌파
해외 기업의 한국 지사 중에는 단순히 제품의 유통만 하는 ‘총판’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벤큐코리아 역시 이러한 선입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최 지사장은 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벤큐코리아는 제품의 단순 유통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니라 벤큐 본사의 글로벌 마케팅에도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온라인 마케팅, 특히 블로그나 SNS 마케팅의 경우에는 벤큐코리아가 처음 시작해서 그 노하우를 벤큐 본사에 전해주었지요. 게임 대회나 게임 팀을 후원해서 홍보효과를 얻는 마케팅도 벤큐코리아가 벤큐 본사에 전해준 방식입니다.”
이러한 벤큐코리아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해외 기업의 자회사라는 점 때문에 처하게 되는 한계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 최 지사장은 담담하게 언급했다.
“한국은 PC방 시장이 상당히 큽니다. 국내 PC방에 공급되는 모니터는 전면에 강화유리 장착이 필수인데, 벤큐의 모니터는 수입 완제품이기 때문에 강화유리가 없지요. 때문에 한동안 PC방 시장에 벤큐 모니터를 공급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입된 제품에 직접 강화유리를 다는 작업을 거친 후 PC방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또한 TV 수신 기능을 갖춘 모니터를 원하는 국내 소비자들이 상당히 많은데, 일반 모니터와 달리 TV 수신용 튜너가 달린 모니터는 8%의 관세를 물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국산 제품들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어서 벤큐코리아가 손을 못 대고 있지요. 참으로 아쉽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벤큐는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빠르게 출시함으로써 극복하고 있다고 한다. 최 지사장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 가며 설명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소비자들은 품질에 대한 요구 수준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때문에 벤큐코리아는 차별화된 기술력에 기반한 제품을 한 발 먼저 내놓고 있지요. 예를 들면 15ms, 8ms, 5ms, 2ms 등의 응답속도를 갖춘 모니터는 벤큐가 처음으로 내놓았습니다. 24인치 LCD 모니터의 출시 역시 벤큐가 가장 빨랐습니다. 그리고 국내에 HDMI 포트를 갖춘 모니터를 가장 빨리 내놓은 업체 중 하나가 바로 벤큐코리아였다는 것을 기억해주시는 소비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한국 소비자들은 제품 자체뿐만 아니라 사후 서비스 면에서도 눈높이가 높다. 최 지사장은 위와 같은 점도 잘 알고 있다며 대응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 소비자들은 대기업 수준의 서비스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지요. 때문에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거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고, 벤큐코리아도 실시하고 있는 무결점 보장이나 방문 서비스, 그리고 수리 시 대체 제품 대여 서비스 등은 사실 한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서비스입니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저희는 벤큐가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여러 나라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위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요.”
BenQ: Bringing Enjoyment ‘N’ Quality to Life
인터뷰를 마치며, 최종성 벤큐코리아 지사장은 IT동아의 독자들과 소비자들에게 인사말을 남겼다.
“전 그다지 사업 수완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만은 알고 있고, 이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지금까지 사업을 이끌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벤큐코리아는 항상 생활 속에서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벤큐(BenQ: Bringing Enjoyment ‘N’ Quality to Life)’라는 브랜드의 뜻이 바로 그러한 지향점을 내포하고 있지요. 고객님들도 이를 이해하시고 신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장 규모에 비해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고, 소비자들의 입맛도 까다로운 편인 한국 시장에서 외국계 기업들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번 인터뷰에서 알 수 있었다. 최 지사장이 인터뷰 내내 강조한 점은 글로벌 기업 벤큐의 기술과 저력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것, 그리고 한국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IT 기업 벤큐의 이미지를 한국에 심기 위해 힘쓰고 있는 최 지사장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길 바랄 뿐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 포털 내 배포되는 기사는 사진과 기사 내용이 맞지 않을 수 있으며,
온전한 기사는 IT동아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용자 중심의 IT저널 - IT동아 바로가기(http://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