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감독-태극전사 13인 '유쾌한 신년 수다'] “‘지배하는 축구’ 시작은 정확한 패스 현역시절 난 이니에스타와 닮았지"

입력 2011-01-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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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 감독, 스포츠동아DB

축구대표팀 훈련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코칭스태프가 지시하고, 선수들이 각자 맡은 위치에서 주문받은 움직임을 펼쳐내는 것이다.

그래서 역할을 바꿔봤다. 새해를 맞이해 스포츠동아는 대표팀 조광래 감독의 독특한 신년 인터뷰를 준비했다. 기자가 묻고 대답을 듣는 형식을 탈피했다. 태극전사들이 질문을 던지고, 조 감독이 답변하는 형식을 택했다.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얼굴을 보면서 감히 묻기 힘든 감독에게 선수들이 궁금한 점을 적었다. 질문은 12월 26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로 전지훈련을 떠나기에 앞서 전달받았다. 정성룡, 김용대, 조용형, 곽태휘, 구자철, 홍정호, 지동원, 유병수, 손흥민, 염기훈, 최효진, 윤빛가람, 김보경 등 아시안 컵 최종 엔트리에 뽑힌 23명 중 일부 해외파를 제외한 13명이 스승에게 용감하게 질문을 던졌다. 일부 민감한 물음은 조 감독의 요청에 따라 부드럽게 순화시켰다.


-대표팀 골키퍼를 볼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시 여기시는지요?

“골키퍼는 최후의 수비수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이는 외부에 비쳐지는 역할일 뿐이지. 기본 역할만 해서 좋은 선수라고 할 수 없겠지? 난 경기 전체를 조망하고, 판단하고, 대처해서 동료들을 리드하는 리더십이 골키퍼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봐. 수비만 할 줄 아는 골키퍼가 아닌 공격적인 마인드를 바탕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야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다. 내가 늘 여러 분들에 주장하는 ‘빠른 축구’도 모두 골키퍼가 첫 시작을 떼지. 골키퍼도 결국 공격적인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야.”


Q1. 감독님 인생철학은? 그라운드서 휘슬들고 커뮤니케이션…태극전사들 조금 불편해도 이해해라

-수십 년간 축구인으로 살아오셨습니다. 감독님의 인생철학과 지론을 듣고 싶어요.


“왜 이리 철학적인 질문을 했는지. 이거 선수 질문 맞아? 일단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말이 있다면 ‘네 일에 미쳐라’야. ‘미치다’는 표현이 거북할지 모르겠지만 열정과 노력, 승부 근성이 모두 합쳐진 결과물이다.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축구에서 나와 여러분들이 같은 생각, 즉 근성과 열정을 갖도록 조련하는 게 내 궁극적인 목표란다. 이를 위해 난 직접 여러분들이 훈련하는 그라운드에 들어가서 휘슬을 들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지. 불편해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네. 좀 더 뛰자고. 화이팅!”


-감독님이 골프를 정말 잘 치신다고 들었어요. 축구와 골프의 공통점이 있다면 뭘까요?

“집중력에 의해 승패가 갈린다는 점이지. 골프에서 ‘장갑을 벗어봐야 경기 결과를 안다’는 말이 있지. 야구에서도 요기 베라가 남긴 말이 있잖아.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축구도 마찬가지야.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려야 승패를 알 수 있잖아. 골프와 축구는 단 한 순간의 방심이 패배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같다고 할 수 있어. 슛과 패스를 할 때 주는 임팩트와 드라이버-아이언 샷-퍼팅 때 임팩트의 감이 같아. 골을 넣기 위한 패스와 크로스의 정확성은 그린 주변에서 하는 어프로치의 감각과도 유사하지. 축구는 골 마우스 근처에서 정교한 플레이가 필요한데, 골프도 정확한 어프로치와 퍼팅 능력이 승패를 좌우해. 우리도 한 단계 높은 축구를 하기 위해 정확한 어프로치를 해야 하겠지?”


-나중에 K리그 현장으로 돌아가실 때 어떤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승부에 집착하는 지도자가 아닌, 세계 축구의 흐름을 읽고 대입하는 감독이 되고 싶어. 항상 속도를 강조해 재미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늘 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는 축구를 하고 싶다. 명품 축구를 구현해서 프리미어리그, 프리메라리가와 제대로 경쟁 해야지.”


-감독님의 현역 시절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자신의 스타일과 가장 비슷한 이는 누굽니까?

“글쎄, 굳이 꼽는다면 스페인 이니에스타? 작은 체구지만 단점을 극복하는 기술과 정확한 패스를 하지. 스페인의 섬세한 패스와 ‘지배하는’ 축구의 시작은 정확한 패스워크에서 비롯된다. 현역시절, 나만의 장점은 정확하고도 예측하기 어려운 지역에 볼 배급을 하는 능력이었어. 지금 여러 분들에게 빠른 패스와 스피드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Q2. 감독 롤모델이 있다면? 다재다능한 맨유 명장 퍼거슨 감독! 유망주 조기발굴·수익창출 등 탁월



-축구 감독으로서 롤 모델이 있다면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야. 퍼거슨은 단순히 코치로서 역할뿐 아니라 어린 유망주들을 조기 발굴해 스타로 키워내고 이를 통해 구단 수익까지 창출하는 남다른 능력을 지녔어. 내가 어린 선수 발굴과 육성을 강조하는 까닭도 퍼거슨과 같은 생각에서야. 퍼거슨은 감독 외에도 구단 경영에 직접 개입해 행정적인 역할도 수행하는데, 나도 훗날 기회가 되면 행정, 기술, 마케팅까지 두루 역할을 할 수 있는 욕심이 있다.”


-감독님의 축구 철학은 무엇인가요? 혹시 CF 활동 계획은 있으세요?

“축구와 기업 경영은 비슷한 점이 많아. 감독은 여느 기업의 CEO처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계속 이어진다네. 의외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위치야. 하지만 난 이를 고난으로 보지 않아. 늘 즐기고 있고, 다소 위험한 모험도 하고 있어. 성공의 방정식과 승리의 방정식을 만들기 위해 내 철학은 축구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모니터링, 피드백을 하자는 거야. 만약에 광고 모델 제안이 온다면 최종 의사 결정권자로서 고뇌와 의지, 승리의 바탕이 되는 감독의 역할을 잘 표현한 내용이라면 한 번쯤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 같아. 그런데 지금은 카타르 아시안 컵이 임박했으니 여유가 없어.”


Q3. 아끼는 보물 1호가 있나요? 손때 잔뜩 묻은 축구기술서·코칭노트…한국축구 세계화 로드맵이 담겨 있지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보물 1호를 알려주세요.


“손 때가 잔뜩 묻어있는 각종 축구 기술서적과 코칭 노트들이야. 브라질, 프랑스, 영국 등을 넘나들며 기록해온 코칭 노트는 지금의 내가 있도록 해준 소중한 보물이지. 이 보물은 내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새로운 힘을 주는 역할을 하지. 기술서적과 노트들은 내가 주창하는 ‘한국축구의 세계화’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어.”


-아시안 컵이 정말 코앞입니다. 지금 이 순간 저희에게 말씀하고 싶은 말이 뭘까요?

“ ‘위기는 찬스’란 말을 가슴에 품고 있어. 우리에게는 박주영의 부상이 그런 경우인데, 이 위기를 극복하는 ‘게임’이 곧 감독의 역할이야. 난 여러 분들을 무한히 신뢰한다. 박주영의 공백은 아쉽지만 역설적으로 나뿐 아니라 대표 모두가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된다고 봐. 축구는 총 11명이 뛰지만 나머지 12명의 역할도 중요하단다. 즉, ‘합심’을 강조하고 싶어. 대회까지 남은 기간 동안 여러 분들과 항상 소통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글쎄, 이 순간의 느낌과 감을 표현하자면 ‘즐겁다’ ‘늘 지혜롭자’야. 지혜로운 결정으로 지휘할 테니 믿고 잘 따라주도록 해.”


-역대 최고의 선수는 누구일까요?

“펠 레와 마라도나, 메시. 이들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을 갖췄잖아. 기술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게 내 철학이야. 이 철학을 한국 축구에 접목하며 강조하는 게 세밀한 패스야. 메시와 같은 폭풍 드리블에 이은 펠레의 정확도 갖춘 슛이 있다면 무서울 게 없지.”


-많은 팀을 지도해 오셨습니다. 언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경 남FC와 FC서울을 이끌던 시절이 가장 기억나. 자금이 풍부한 구단과 조금 가난했던 극단적인 설정 속에 감독으로 성장하는 데 많은 기회를 줬고, 기쁨과 성공을 느끼게 해줬지. 경남을 이끌 때 선수와의 소통, 축구에 대한 꿈과 열정 등을 항상 되새길 수 있었어. 그래서 지금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고. 늘 어려웠던 경남 시절, 강호를 꺾기 위해 고민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 시간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


-가장 행복한 기억이 있다면요?

“축 구를 할 수 있었던 진주고 시절이 기억에 남아. 주위 반대 속에 선수로 진로를 결정한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평생의 추억이야.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됐을 때도 내 인생 가장 행복한 기억이자, 가슴 벅찬 시간이었고. 대표팀 감독이란 내 개인의 기쁨이기도 했지만 날 믿고 택한 이들에게 보답해야 하는 무한한 책임감도 가질 수밖에 없어. 아시안 컵이 나와 여러 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출발선임을 잘 알고 있다.”


Q4. 아시안컵이 코앞인데…

주영 공백 아쉽지만…위기가 곧 기회, 똘똘 뭉쳐 51년만에 우승컵 되찾는다

-아시안 컵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하신 약속이 무엇인가요?


“장도에 오르기 전에 스스로에게 한 약속은 ‘한국축구의 부흥’이야. 월드컵 단골손님이 무려 51년 동안 아시안 컵 정상에 서지 못한 게 말이 되니? 그간의 징크스를 털고 축구 부흥을 이루자는 강한 의지를 실현에 옮기기 위해 노력해야지. 팬들의 많은 성원이 필요한 때야. 새해 축구 팬들에게 ‘건승하시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해드리고 싶고,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자. 할 수 있지? 나를 믿고, 여러분 스스로를 믿자.”

정리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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