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는 것에 도전”…그래서 아름답다

입력 2011-01-25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 서른셋 이규혁, 세계스프린트선수권 네번째 우승이 각별한 이유

다섯번의 올림픽 노메달 비운의 스타
세계선수권 우승 진정한 실력자 입증
전설의 스프린터 어깨 나란히 한풀어
11개월 전, 이규혁(33·서울시청)은 밴쿠버 리치몬드 오벌 빙상장에 드러누워 있었다.

다섯 번째 동계올림픽, 또다시 노 메달. 새파란 후배가 태극기를 펄럭이며 링크를 도는 동안, 큰 형님은 땀으로 젖은 유니폼도 벗지 못한 채 멍하니 허공만 바라봤다.

그리고 “안 되는 것에 도전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좌절은 그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안겼다.

잠시나마 은퇴를 고민했던 그에게 건강한 미련이 남았고, “좀 더 뛰어서 반드시 명예 회복을 하고 링크를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각오의 결과는 24일(한국시간) 여실히 나타났다. 이규혁은 네덜란드 헤렌벤에서 끝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스프린트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 남자 500m 2차시기에서 34초77의 기록으로 1 위를 차지한 뒤 1000m 2차시기에서 1분9 초48로 6위에 랭크됐다.

이로써 전날 500m(1위·34초92)와 1000 m(4위·1분9초65) 1차시기 결과를 합해 종합 1위를 차지했다. 2007·2008년 2연패와 지난해 우승을 포함해 벌써 네 번째 종합 우승. 이고르 젤레조프스키(벨라루스), 에릭 헤이든(미국), 제레미 워더스푼(캐나다) 등 전설적인 스프린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이규혁이 “스프린트선수권에서 우승한 선수가 선수들 사이에서도 인정 받는다”며 남다른 애착을 보였기에 더 벅찬 결과였다.

예고된 성과였는지도 모른다. 이규혁은 지난해 12월 전국남녀스프린트선수권에서 밴쿠버올림픽 500m 금메달리스트인 후배 모태범(22·한국체대)을 꺾고 10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규혁이기에 만들어 낼 수 있는 대기록.

또 이번 대회 500m에서도 모태범(종합 2위)을 두 차례 모두 눌러 최상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후배들의 기세에 밀려나는 듯 했던 베테랑이 다시 한 번 건재를 과시한 것이다.

1994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 이후 16년 동안 다섯 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했던 한국 빙상 단거리의 선구자. 그 때마다 매번 눈물을 삼켜야 했던 비운의 스타.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의 간판이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이규혁이라는 사실을 끝내 보여주고 말았다.

이규혁은 곧바로 동계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로 이동해 1500 m 3연패에 도전할 예정. 주종목인 1000m는 이번 대회에서 열리지 않는다.

늘 후배들의 귀감이 됐던 그는 역시 “15 00m는 체력 소모가 심해 운이 따라야 우승할 수 있다. 이제 나보다는 후배 태범이가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다”고 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