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팬클럽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중간 접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프로슈머'
●중간 접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프로슈머'

팬들이 직접 통장을 만들어 7개월 동안 모은 정성으로 만든 ‘완전무결두근버스’.이 버스는 장근석의 팬클럽인 ‘장근석 갤러리’에서 활동하는 팬들이 7개월 동안 모은 돈으로 운영한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
가요프로그램 1위를 수상한 아이돌 스타는 언제나 팬클럽을 향한 감사의 인사를 빼어놓지 않는다. 팬들 역시 이 한 마디를 위해 오랜 고난의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팬'이란 막연하게 TV를 보는 시청자가 아니라 '오빠'나 '누나'의 성공을 위해 움직이는 진짜 열성 팬클럽 회원을 의미한다. 일부 팬들은 무명의 연예인이 스타가 되기 위해서 그들을 위해 무엇이든 나설 태세다.
한국청소년들은 누구나 한 번쯤 '오빠부대', '누나부대'에 속해 활동한 적이 있다. 순간의 열정이기도 하고 이 같은 과외 활동을 통해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탈출하기도 한다. 우리 어머니 세대들 역시 조용필, 나훈아, 남진오빠에 환호하던 시절이 있었지 않은가?
스타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팬들이 있기에 존재하고, 팬들은 스타로 인해 대리만족과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관계가 과연 낭만적이기만 할까?

팬클럽은 스타의 미래를 좌지우지 하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1996년 서울 뚝섬 나루터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 동아일보 자료사진
■ 이제는 낭만이 아닌 산업화로 흘러가는 '팬클럽 문화'
1980년대 음반시장의 활황과 더불어 90년대 아이돌 스타들이 전성기를 누리며 전문 집단화된 팬클럽 문화는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급성장했다. 이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에 열광하는 팬들이 있었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서로 집결하여 정보를 공유하며 '팬 카페'에 가입하여 활동하기 시작했고 점차적으로 조직적 체계를 갖추면서 일정 영향력을 행사하게된 것이다.
최근 음악시장의 장기 불황으로 빅 스타가 배출되지 못해 팬클럽의 규모가 작고 다양해진 경향이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국내 최고의 라이벌 그룹 '에치오티(HOT)'와 '젝스키스'는 10만 명 이상을 몰고 다니며 서로 경쟁하기도 했다. 이런 대형 팬클럽들은 경쟁 스타에 지지 않기 위해서 음반을 한장이라도 많이 구입하고 행사장에 몰려가는 등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이러한 팬클럽의 충성도는 스타와 기획사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몇 년 전 모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에 대형기획사의 담당자가 모자이크 처리되어 "팬클럽은 자발적으로 운영된다…회사 측에서 일정 관여하지 않는다."고 거짓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실제 그 회사에는 가수별 팬클럽 담당자가 한 명씩 존재하고 있었다. 사실 담당자가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다.
아이돌 스타를 너무 좋아해서 만들어지는 공식 팬클럽은 일 년에 한 번 또는 두 번의 일정 회비를 내고 각종 기념품을 받고 그들만의 팬 미팅에 참석하길 원한다. 이 많은 수의 회원이 내는 회비와 많은 일정에 참가하기 위해 차를 대절하여 먹고 움직이는 비용은 수억 원을 훌쩍 넘게 된다.
그래서 대형 연예기획사에는 각 스타별로 팬클럽을 담당하는 직원을 두고 스타에 대한 정보제공과 함께 팬클럽 임원들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따라서 요즘 팬클럽은 진화에 진화를 거쳐 규모와 시스템이 상당히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정도다.

스타와 팬은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다. SM파리 공연 당시 관객 사진.
■ 스타와 팬클럽의 관계는 '상부상조'
그렇다면 어째서 스타들은 그토록 팬클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관리할까? 대외적인 이유는 당연히 팬들의 사랑으로 자신들이 유지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팬클럽은 스타의 인기를 증명하고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일본에 갔는데 공항에 일본 팬 수만 명이 운집했다.", "생일파티에 몇 만 명이 모여들었다." 등의 팬들의 단체 행동과 이에 관련된 소문은 은연중에 그 스타의 인기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둘째 팬클럽의 수는 그 스타의 개런티와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인기 가수 K군의 팬클럽이 4만 명이니 행사출연료가 2000만 원, W그룹의 팬클럽이 2만 명이니 1000만 원 등, 팬클럽 수에 따라서 관객 집객이 보장되기 때문에 어떻게 이들을 관리하는 지가 중요한 숙제가 된 것이다.
셋째, 인기를 유지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일부 스타급 가수의 팬클럽은 자신이 지지하는 가수의 순위를 높이기 위해 치밀한 기획과 행동을 함께한다. 팬클럽 카페 등의 게시판에 음원 스트리밍 조회수를 높이는 방법, 음악 프로그램 인기순위 투표, 신청곡 신청코너 안내 등 여러 방법들을 고지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심지어 몇 년 전 데뷔했던 신인가수의 경우 데뷔하자마자 모바일 다운로드 순위가 두 달이나 10위권에 올라 기획사측에서 아르바이트를 고용하여 다운로드 받아서 인기몰이를 시도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이에 일부에서는 온라인 음원 순위집계나 인기순위에 의혹을 갖기도 한다.
이는 비단 연예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등의 산업 등은 마니아층 없이는 신규사업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 대기업 역시 마찬가진데 삼성이나 애플 휴대폰의 열혈 마니아는 신제품이 출시되기 전에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출시되면 최초로 구입하려고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이러한 팬들의 충성도는 당연히 매출로 연결되고 다양한 커뮤니티활동으로 인해 서비스나 상품의 질을 향상시키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로 볼 때 특정 스타의 팬클럽은 스타와 기획사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VIP 고객'임에 틀림없다.
■ 단순 소비자 아닌 스타탄생에 관여하는 '프로슈머'
최근에는 '프로슈머(prosumer)'라고 불리는 소비자이자 생산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합성어이다. 팬클럽이 실제 프로슈머와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스타의 향후 활동에 관한 스케줄 전략을 기획할 때, 기획사는 연예인과 매니저는 물론이고 팬클럽 회장이 함께 의논하는 추세다.
더구나 최근 바이럴마케팅, SNS마케팅 등이 큰 영향력을 가지면서 파워 블로거들의 힘이 말 그대로 힘을 얻게 되었다. 이들은 소비자들을 대표하며 생산자와의 사이에서 또 다른 역할을 담당하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파워 블로거들의 공동구매로 인한 수수료 챙기기도 그렇지만 일부 아이돌 스타의 팬클럽 회장들도 자신의 막강한 권한을 남용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이들의 말 한 마디에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타 팬클럽의 전국 회장 출신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연예기획사로 스카우트되는 사례가 많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수만 명이 단체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팬클럽의 힘이 대단하지 않은가? 물론 이 같은 사실은 그리고 스타의 인기를 조금은 냉정하게 바라봐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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