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의 오늘] 1991년 재일교포 박주리, 한국명 되찾다

입력 2011-09-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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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콘텐츠가 일본 열도를 휩쓴 지 10여년.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바라보는 재일교포들의 시선은 어떤 것일까. 적어도 한인으로서 당당함은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오랜 세월 멸시와 차별의 굴레 속에서 한국인임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1991년 오늘, 재일교포 스타가수 박주리가 고국의 무대에 섰다. 박주리는 이날 오후 6시 서울 잠실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1991 세계한민족체전’ 축하공연 무대에서 노래했다. 조용필, 이미자, 주현미, 현철, 정훈희, 정수라, 김정구 등 한국 가요계의 대표적인 가수들도 그와 함께 무대에 나섰다.

일본 오사카 출신 박주리는 한국인 3세. 18세에 가수로 데뷔했지만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 소외를 염려한 어머니의 간절한 요구로 ‘후지가와 지아키’라는 일본명으로 활동했다. 그녀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준 사람은 가수 패티 김. 1988년 일본을 방문한 패티 김은 그 사연을 듣고 “이젠 당당히 한국으로서 노래하라”고 격려했다. 용기를 낸 박주리는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며 ‘하나의 생각’을 불렀다. 이 같은 이야기는 당시 일본 아사히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일부 일본 톱가수, 예컨대 ‘엔카의 전설’로 불리는 미조라 히바리 역시 한국계이지만 일본인들은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박주리 역시 이런 상황을 경험했지만 이를 떨치고 나와 당당한 한인으로서 무대에 나섰고 자신의 이름으로 1993년 12월 NHK가 주는 신인가요상을 거머쥐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tadad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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