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유이아빠’ 로만 기억하나요? 그물같은 내야수비의 달인!

입력 2011-11-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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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김성갑 수석코치의 공식 신장은 168cm. 하지만 스스로는 “그보다 더 작다”고 털어놨다. 현역 시절 ‘작은 거인’이라고 불렸던 김 코치는 투수들에게 “그 쪽으로 공이 가면 안심이 된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그물망 같은 내야 수비로 이름을 날렸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1. 넥센 김성갑 코치


공식 신장 168cm 작은키가 무색
한시즌 101경기서 실책 단 3번뿐


57kg 몸무게로 통산 14아치
압축방망이 쓴다 오해 받기도

“딸 유이 날 닮아 강철체력”

김 코치의 딸은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멤버이자 연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유이. 아빠와 달리 키가 훤칠한 딸은 넥센 홈경기 때 시구를 맡기도 했다. 사진제공|플레디스



살짝은 희끗해진 머리. 조금은 볼록해진 배.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주름까지…. 지금은 스포트라이트의 뒤편에서 선수들을 조련하고, 또 다독이는 그들. 하지만 코치도 한 때는 푸른 그라운드의 주연이었다. 스포츠동아는 올 스토브리그 기간 동안, “나, 왕년에…” 라는 한마디로 담을 수 없는 그들의 현역 시절을 조명하고자 한다. ‘코치, 그들을 말한다’그 첫 번째 주인공은 ‘유이 아빠’로도 유명한 넥센 김성갑(49) 수석코치다.

공식프로필 신장 168cm. 하지만 김성갑 수석코치는 “사실 그것보다 더 작다”고 털어놓았다. 역대 최단신(165cm) 선수인 김선빈(KIA)과 비교해 달라는 말에 그는 “도토리 키재기”라며 웃었다. 하지만 김 수석코치는 현역시절 ‘작은 거인’이라고 불렸다. 날렵한 내야수비는 그의 전매특허. 프로 입단 이후에는 주로 하위타선에 배치 됐지만, 대구상고∼건국대 시절에는 중심타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 김성갑 쪽으로 타구 가면 안심…그물 같은 내야수비

1985년 삼성에 입단한 김성갑 수석코치는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미국 플로리다 베로비치 전지훈련 명단에 포함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1985시즌 중 영장을 받고 방위 복무를 하던 도중, 신생팀 빙그레로 트레이드 된다.

김 수석코치는 “이적이 야구 인생의 새로운 계기였다”고 말한다. 빙그레에서 그는 주전 3루수 자리를 꿰찼다. 당시 빙그레에서 투수로 활약한 한화 이상군 운영팀장은 “작은 고추가 맵다는 얘기가 딱 맞는 선수였다.
3루 쪽으로 공이 가면 투수가 안심이 될 만큼 그물 같은 수비를 펼쳤다”고 회상했다. 1988시즌에는 100경기 이상 출장(101)하면서, 단 3개의 실책만을 범했고, 1987년 10월3일 대전 해태전부터 1988년 7월20일 대전 OB전까지 67연속경기 무실책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 한번의 트레이드로 1991년부터 태평양 유니폼을 입은 그는 2루수로 변신한다.

당시 김성갑 수석코치와 키스톤 콤비를 이룬 염경엽(LG) 코치는 “안정된 수비를 하는 내야수들은 수비 범위가 좁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김성갑 코치님은 수비 범위가 대단히 넓으면서도 실책이 적은 2루수였다”고 했다. 1994년 신인 선수로 입단한 이숭용은 “당시 노장 선수였는데도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동작이 대단히 민첩했다. 더블플레이 연결이 상당히 빨랐다”고 회상했다.

빙그레 시절인 1988년 MBC와의 경기에서 홈으로 매섭게 파고드는 김성갑(오른쪽)의 모습. MBC 포수 심재원은 김성갑의 허슬플레이에 공을 놓쳤다.스포츠동아DB




● 화려하진 않지만 실속 있는 방망이

그는 ‘투혼의 사나이’로도 이름을 떨쳤다. 전경기(108)에 출장했던 1987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진통주사를 맞아가면서까지 경기에 나섰다. 당시 전경기 출전 선수는 그를 포함해 6명 뿐이었다. 신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단련된 정신력 덕이었다. 이상군 운영팀장은 “파이팅 넘치고 다부진 선수였다”고 기억했다.

통산타율 0.235. 방망이는 분명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속은 있었다. 1989년 주로 하위타순으로 나서면서도 103경기에서 45타점을 올렸다. 역대 포스트시즌 7회 이후 2점차 이하 상황에서 득점권 타율이 0.471(17타수8안타)에 이를 정도로 큰 경기에도 강했다. 김 수석코치는 “큰 경기 또는 관중이 많은 경기를 즐겼다. 수비에서도 공이 오면 다이빙캐치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회상했다.

예상 밖의 장타로 팬들을 놀라게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당시 그의 체중은 57kg에 불과했다. 하지만 1989년 4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등 통산 14개의 아치를 그렸다. 워낙 왜소한 체격 때문에 “김성갑이 압축배트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지금도 “운동 중독”이라는 말을 듣는 그는 나이를 무색케 하는 다부진 몸매(67kg)를 자랑한다. 한 때는 골프에서 드라이버가 300야드까지 나갈 정도로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김 수석코치는 “딸 유이도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도 끄떡없다. 강한 체력은 날 닮은 것 같다”며 웃었다.

1995년. 그는 선수생활의 마지막 해에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전 베스트10(서군 2루수부문)에 뽑히는 영광을 누렸다. 당시 서군 내야에는 유격수 이종범(해태), 1루수 장종훈(한화) 등 슈퍼스타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는 1995시즌에도 114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1996시즌 현대가 창단되면서 정든 유니폼을 벗었다. 이후 1996년부터 현대에서 코치를 시작해, 히어로즈까지 15년 간 단 한 번의 이적 없이 지도자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김 수석코치는 “통산 942경기를 뛰었는데 1000경기 출전을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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