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때리면 볼 안줘”…한 토스·한 고집 합니다

입력 2012-02-25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는 고집이 센 편이다. 공격수가 대충 플레이하는 기색을 보이면 아예 볼을 안 줄 정도로 강단도 있다. 한선수는 그 고집과 강단으로 한국배구 차세대 세터 자리를 예약했다. 한선수가 엄지를 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대한항공 코트 지휘자
좌충우돌 세터 이야기


13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프로배구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27)를 만났다. 기승을 부리던 강추위가 물러가고 모처럼 날씨가 따뜻해져 한결 편안한 분위기에서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기자나 선수나 마음이 마냥 편할 수 없었다. 최근 불거진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한국배구연맹(KOVO) 임직원과 남녀 전 구단 선수, 사무국 직원 등 370여 명이 모여 이날 부정방지 교육을 받고 자정 결의대회를 열었다. 한선수에게 먼저 최근 사태에 대해 물었다. 그는 “전혀 몰랐다. 언제 어디서부터 이런 일이 시작된 건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조작에 가담한 일부 선수 포지션에 세터라는 지적에는 “세터는 자신이 올린 볼을 공격수가 잘 때려서 포인트 낼 때 가장 쾌감을 느끼는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두워진 분위기 전환을 위해 화제를 바꿨다.

한선수는 누나만 셋을 둔 막둥이다. 큰 누나부터 막내 한선수까지 모두 2살 터울.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랐을 것 같다”고 묻자 그는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데 절대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결심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가 넷째인 한선수를 임신했을 때 의사들은 위험하다며 출산을 말렸다. 가족들도 동의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끝까지 낳겠다고 주장했다. 아무도 그 고집을 못 꺾었다. 한선수는 “내가 고집이 좀 세다.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는 또 있다.

한선수는 고교 때 처음 팀 숙소를 이탈했다. 허리는 아픈데 계속 게임은 뛰어야 하고 결과는 안 좋고 코치들에게 꾸지람 듣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집에 가자 어머니가 “돌아가라”며 한선수를 따끔하게 꾸짖었다. 의외였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 배구를 시작할 때 가장 반대한 사람이 어머니였다. 중학교 때까지도 “그만 하라”고 말렸다. 그런 어머니 입에서 “네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하라”는 말이 나왔다. 한선수는 군말 없이 짐을 싸 숙소로 돌아왔다. 그는 “그 때 이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게 됐다”고 회상했다.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배구 팬들은 지금의 ‘꽃 미남 세터’ 한선수를 아예 못 볼 뻔했다. 어머니를 꼭 닮아 고집 센 세터, 그 고집으로 한국배구 차세대 세터 자리를 예약한 한선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누나 셋에 막둥이…어린시절부터 고집 세
한때 ‘말 안듣는 놈’으로 찍혀 벤치신세
코트만 서면 승부사로 변신…지기 싫어
대충 때리는 공격수 절대 용납 못해

고마운 여친…박철우만 보면 결혼생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지난해 챔프전 굴욕
올해요? 우승컵 가져갈 겁니다…무조건 !



○막둥이 아들 배구공을 잡다

-누나만 셋이라 귀여움을 독차지했을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어렸을 때 성격이 여자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매일 세명의 누나들과 어울렸으니까. 그런데 운동을 시작하면서 확 성격이 바뀌었다. 이게 다 배구 덕분이다.”


-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 배구부가 창단됐고 체육선생님이 스카우트한다며 테스트를 했는데 뽑혔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부터 세터였나.

“레프트였다. 그런데 창단 팀이라 선수가 많지 않아 6학년 형들이 졸업하니까 세터가 없었다. 그 중에 토스가 가장 나은 내가 하게 됐다. 사실 어렸을 때는 다 공격수 하고 싶고 그러지 않나. 세터는 볼만 계속 올려줘야 하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때 세터를 시작한 게 잘 된 일이다. 나에게 맞다.”


-학창 시절에는 동갑내기 유광우(현 삼성화재)가 당대 최고 세터 아니었나.

“맞다. 고등학교 시절 뿐 아니라 대학교 때도 광우가 최고였다.”


-유광우에 가려진 2인자 신세가 속상하지 않았나.

“특별히 그런 생각 안 했다. 어느 팀에 있던 졸업하기 전에는 우승은 하자 그런 생각만 했다. 팀에 맞게 열심히 잘 하는 선수가 1인자 아닐까.”


○프로 입문 후 우여곡절

-프로에 입단할 때도 유광우와 운명이 엇갈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에 삼성화재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대한항공 지명을 받아 당황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좋은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 와서 훈련 때는 매일 볼만 줍고 개인훈련 할 때나 토스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형들이 다치면서 나에게 기회가 왔다.”


-첫 시즌(07∼08) 주전 공백을 훌륭하게 메웠는데 다음 시즌부터 슬럼프가 왔다.

“감독님과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거의 경기에 못 나가고 닭장(벤치 선수들이 몸을 푸는 구역) 안에만 있었다.(웃음)”


-뭐가 문제였나.

“저는 옆에서 누군가가 계속 주문하거나 하면 더 안 되는 스타일이다. 큰 포인트만 지시 받고 알아서 풀어가기를 원했는데….”


-현 사령탑인 신영철 감독이 온 뒤 자리를 잡아 갔다.

“감독님이 세터 출신이니 이해하는 게 많으신 것 같았다. ‘네가 왜 그런 지 다 안다’고 하셨다. 사실 전 감독님과 약간 트러블이 있어 안 좋은 애로 평가 됐었다. 말을 안 듣는 놈으로 찍혔던 거다. 그런데 신 감독님은 사람마다 성향이 다 다른 것이라며 힘을 주셨다. 그 이후로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플레이가 늘었다.”


-신 감독도 선수시절 세터 출신으로 고집이 상당했다고 한다. 세터들은 다 고집이 센 것 같다.

“일단 코트에 들어가면 좀 변한다고 해야 하나. 싫어하는 게 너무 커서. 정말로 지기 싫은 게 강하다. 실제로 나는 경기 중에 공격수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어쨌든 내가 볼을 올려주는 사람이니까. 예전 외국인 선수 밀류세프는 내가 하도 미안하다고 하니 ‘네 잘못 아니다. 그만하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공격수가 대충 때리는 건 용납 못한다. 코트에서 보면 공격수가 최선을 다해서 때리는지 아닌지 다 안다. 세터가 컴퓨터는 아니지 않나. 볼이 약간 나쁘더라도 최대한 신경을 써서 때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보이면….”


- 공격수가 최선을 다 안하면 어떻게 하나.

“아예 그 다음부터 볼을 안 준다.”


○삼성화재에 설욕 위해

- 작년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에 어이없게 패한 것을 되갚아야 할 텐데.


“챔프전에는 처음 올라갔는데 너무 쉽게 무너져서 아쉬움이 컸다. 다시는 그런 무기력한 게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 챔프전에서 다시 삼성화재 만나면 이길 자신 있나.

“자신 있다. 챔프전의 긴장감 같은 것을 얼마나 떨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현재 대한항공(승점 62점)은 삼성화재(72점)에 이어 V리그 남자부 2위다)


-국가대표로의 목표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시즌만 생각하고 있다. 시즌 끝나면 대표팀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 동갑내기 박철우는 결혼해서 현재 임신 중이다. 결혼 하고 싶지 않나.

“지금 교제 중인 여자친구가 나를 많이 배려해줘 고마운 게 참 많다. 나도 빨리 하고는 싶다. 그런데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고….(웃음)”


한선수는?

○생년월일 : 1985년 12월 15일
○신장/체중 : 189cm/80kg
○포지션 : 세터
○학력 : 소사초-송산중-영생고-한양대
○프로경력 : 2007∼2008시즌 드래프트 2라운드 2순위 대한항공 입단
○대표경력 :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2011월드리그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