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terview]신치용 “사위 박철우, 딸한테 잘할 때 보다 배구 잘할 때 예뻐”

입력 2012-03-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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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지고는 못사는 타고난 승부사다. ‘훈련을 충분히 못해 놓으면 불안하다’는 훈련 지상주의자이기도 하다. 코트에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늘 굳은 표정이었던 신 감독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훈련장 내 자작나무 숲길을 걸으며 모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용인|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우승 하면 할수록 패배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려놓는 법 몰랐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
선수별 족집게 지도법, 29년 경험의 결정체
지옥훈련? 하지만 그 효과는 분명히 나타나

2년 재활 기다린 유광우 활약 고맙고 안타까워
박철우는 왜 데려왔냐고? 팀 미래 위한 선택
우리도 약점은 있다, 그래서 또 발전한다


신한불란(信汗不亂). 땀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삼성화재배구단 체육관에 걸려있는 글귀이자 신치용 감독의 지론이다. 2011∼2012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다음 날(8일), 신 감독을 만났다. 신 감독은 “오늘 사진 촬영까지 있는 줄 알았다면 어제 우승 회식 자리에서 술을 좀 덜 마실걸 그랬다”며 웃었다.

신 감독은 1995년 11월 삼성화재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1997년부터 슈퍼리그에서 9년 연속 챔피언에 오르는 신화를 창조했다. 2005년 프로배구 V리그 출범 이후에도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팀을 5번이나 챔피언결정전 정상에 올려놓았다. 한 팀에서 18년, 그것도 항상 챔피언을 다투는 팀의 감독 생활을 한다는 것은 영광이자 고통이다. 신 감독은 “정글에서 언제 밀려날지 모르니까 더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고 했다. 아울러 “오래 돼 썩을 수도 있지만, 잘 발효되고 향기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 한다. 거쳐 간 제자와 후배들이 많다. 그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더 무거운 책임감으로 감독생활을 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쉼 없이 달려왔다. 그 극심한 스트레스는 어떻게 이겨냈나?

“한 시즌만 성적이 나쁘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 감독 자리다. 그런데 18년을 했다. 우승 횟수가 쌓여갈수록 선수들을 더 다그쳤다. 구단도 선수도 나도 점점 더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 다른 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끌어내리려고 노력하니까. 그래서 더 준비해야 했고, 더 강하게 지도했다. 그런 생활이 계속 누적됐다. 큰 경기가 있으면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스트레스를 못 이겨 새벽 1∼2시에 러닝머신을 뛰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내가 인생을 이리 살아도 되는것인가’ 싶었다. 최근에야 흐름에 맡기며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아마 진작 쓰러졌을 것이다.”


-선수들의 능력을 끄집어내는 특별한 비결이 있다면.

“선수들 지도만 29년째다. 그동안 수많은 선수들을 지도했던 경험이 내 자산이다. 선수마다 다르긴 하지만 ‘이런 훈련 뒤에는 이런 효과가 오더라’라는 축적된 경험이 있다. 또 팀 전체 훈련보다는 개인 훈련을 많이 시키는 편이다. 그 선수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 감독의 일이니까.”


-삼성화재는 훈련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토록 독한 훈련을 시키는 이유는?

“선수가 경기에서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연습할 때 자신의 100%를 투자하지 않으면 나쁜 습관이 몸에 밴다. 차라리 쉬는 것이 낫다. 이 때문에 훈련장에서 자신이 가진 100%의 능력을 사용하는 법을 철저하게 각인시킨다. 훈련이 고될 수밖에 없다.”


-세터 유광우가 결국 올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어 냈다. 소감은?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유광우가 오던 해(2007∼2008 시즌 1라운드 2순위)에 신인 드래프트 확률 추첨을 했다. 순번으로 보자면 우리가 대한항공 다음인데 앞 순위가 됐다. 확률대로 갔다면 한선수(대한항공)가 우리 팀에 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팀에 온 첫날 딱 하루 연습을 했는데 발목이 형편없이 부어 있었다. 아팠는데 대표팀에 뽑혀 참고 뛰었다고 했다. 발목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결국 수술을 받았는데 실패했다. 발목의 감각이 정상이 아니었다. 의사들이 선수 생활 못할 거라고 했다. 광우도 그만둘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난 기다릴 테니 재활하라고 했다. 정 안되면 구단 사무실 일이라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2년을 기다렸다. 지난 시즌 최태웅(세터)이 현대캐피탈로 가면서 세터로 투입했고, 작년 초반 꼴찌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광우는 지금도 1주일에 1번 신경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그러면서도 올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세터가 됐다. 고맙고 안타깝다.”


-박철우를 데려온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우승이 이어지면서 신인 드래프트에서 10년을 말번을 뽑았다. 아무리 애써도 선수의 기량이라는 것은 갑자기 늘지 않는다. 6,7번 지명으로 온 선수들은 최소 3,4년은 만들어야 한다. 주전으로 못 뛰던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일도 쉽지 않다. 어려움이 컸다. 나는 창단 감독으로 18년간 일해 온 삼성화재 배구단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어려움을 감수해서라도 최고의 공격수를 하나 데려와야 했다. 그것이 당시 박철우였다. 올 시즌 그나마 박철우라도 있으니까 견디고 있다.”


-레안드로, 안젤코, 가빈 등 외국인 선수가 대부분 한국에서 성공했다.


“처음 뽑은 용병이 아쉐(브라질)였다. 일본리그 경험도 있고 해서 데려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인성이 엉망이었다. 결국 돌려보냈다. 실력보다 인성이 중요하다. 또 용병은 배가 고파야 한다. 돈이든 기술을 배워가겠다는 욕심이든 뭐든 한 가지는 있어야 한다. 가빈은 성격이 좋았고, 한국에서 기술을 연마해 유럽으로 가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사실 가빈 같은 공격수는 많다. 우리 팀에 오기 전에 현대캐피탈과 LIG에서 테스트를 받았는데 선택을 못 받았다. 그런 선수를 데려온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 높이가 있고, 성품이 좋으니 한 번 만들어보자 싶었다. 중요한 것은 팀 컬러에 얼마나 어울리느냐와 어떻게 적응하느냐다.”


-이제 챔피언결정전이 남았다. 어떻게 예상하나?

“대한항공이 올라온다는 계산 하에서 준비할 생각이다.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알기 때문에 누가 먼저 흐름을 타느냐가 관건이다. 1,2차전에서 치고 나가야 한다. 물론 우리도 약점은 있다. 가빈과 박철우의 서브 리시브 공백이다. 거기서 불안과 부담이 생긴다. 6차전에서 0-3으로 지기는 했지만 그에 대비한 포메이션을 시도했는데 잘 통했다. 남은 시간 선수들의 체력을 회복시키고, 챔프전에서 필요한 움직임을 만들어 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대한항공의 서브가 강하긴 하지만 챔프전이 주는 중압감 속에서 그렇게 마음 놓고 서브를 때릴 순 없을 것이다.”

용인|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eren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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