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9년의 기다림은 1808일만의 선발승으로 꽃 피웠다. 두산 노경은이 17일 잠실 삼성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3연속경기 QS…1808일 만의 감격 선발승 일궈
“오늘은 완급조절도 되더라”…새가슴 오명 씻어
‘불펜의 선동열!’ 얼핏 들으면 칭찬 같지만 두산 노경은(28)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수식어였다. 불펜에선 역대 최고 투수로 꼽히는 선동열(현 KIA 감독)급의 공을 던지지만, 마운드 위에선 자신의 공을 못 던진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선발과 계투,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1·2군을 오가던 지난 9년간 강해지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는 일이었다. 마운드 위에서 오롯이 ‘노경은’으로서 공을 던지게 된 계기도 생각보다 간단했다. 지난해 꼭 한번은 이기고 싶었던 롯데 이대호(현 오릭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거짓말처럼 일이 술술 풀렸다.
노경은이 17일 잠실 삼성전에서 2전3기 끝에 선발승을 올렸다. 2007년 7월 6일 대구 삼성전(6이닝 4안타 2실점) 이후 1808일 만의 선발승이었다. 컨디션 난조로 2군으로 내려간 임태훈을 대신한 땜질선발이었지만, 3연속경기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역투하고 있다.
그동안 승리와는 인연이 없었다. 첫 선발 등판이었던 6일 잠실 SK전서 6.2이닝 1실점했고, 2번째 등판이었던 12일 사직 롯데전서도 7이닝 2실점했지만 득점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늘 “팀이 이겨서 좋다”며 웃었다. 올 스프링캠프 때부터 필승계투로서 기대를 받으며 시즌을 맞은 게 처음이었고, 팀에 보탬이 되는 게 유일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3번째 등판서도 흔들림 없이 7이닝 3안타 2실점의 호투를 펼쳤다. 지난 2경기에서 17개(10+7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신(新) ‘닥터K’로서 떠올랐던 노경은이다. 이날도 4회 3개의 아웃카운트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는 등 총 8개의 삼진을 솎아냈다. 최고 149km의 빠른 볼에 투심패스트볼,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까지 다양한 변화구로 상대를 압도했다. 6회 2사 후 흔들리며 3사사구(2볼넷·1사구)로 만루를 내줬지만 다음 타자 손주인을 범타로 처리하는 위기관리능력도 돋보였다.
경기 후 노경은은 “첫 번째 등판 때 1이닝씩을 전력으로 던졌다면 두 번째는 변화구를 던질 수 있게 됐고, 오늘은 완급조절이 되더라”며 “후배들에게도 항상 ‘네가 마운드에 올랐을 때 이천(2군) 마운드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는데 나 역시도 편안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이미지트레이닝을 한 게 큰 도움이 됐다. 내 공을 던질 수 있게 된 계기도 위기상황을 이겨내면서 자신감이 붙으면서였다”고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잠실|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hon927